내나라보기/2015년 이후

괴산- 각연사

포도주빛 바다 2015. 10. 3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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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답사는 충북 괴산이다.
날씨는 4월 이라기 보다는 마치 5월의 어느날 같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차도 막힘 없이 달려줘서 일찍 괴산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칠성면에 있는 각연사...

 

 

 

각연사

신라 법흥왕때에 유일대사가 현재의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근처에

터를 잡고 절을 지으려 했다.
재목 다듬는 공사를 하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쉬지 않고

대팻밥과 나무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일대사는 이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까마귀들을 따라가 보았다.
현재의 각연사 터 연못에 대팻밥이 떨어져 있어 들여다보니

연못 안에 돌부처님 한 분이 계시고, 그 부처님 몸에선 광채가 퍼져 나왔다.
부처님을 뵙고 유일대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
연못속의 돌부처님을 보고 깨침을 얻었다 하여 "깨달을 각(覺), 연못 연(淵)"자를 써,

"각연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절 주변은 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연꽃이 피어있는 듯 둘러싸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사 주변은 한참 공사중이었다.
먼지를 날리며 드나드는 트럭들을 피해 진창길을 잠시 걸어 올라오니

대웅전이 보인다.

 

 

 

 

 

 

 

[괴산 각연사 대웅전]

충북유형문화재 제126호 (1982년 12월 17일 지정)

오랜 역사를 이어온 고찰, 각연사 안의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사찰의 본존불을 모시는 전각으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각연사 대웅전은 사각형의 석축기단 위에 정남향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다포집이다.
주초는 다듬지 않은 덤벙초석이며 기둥에는 가벼운 배흘림이 있다.
정면 3칸에는 모두 빗살합문을 달아 출입토록 하였으며 측면 앞쪽 칸에도 빗살문을 달았다.
건물 내부에는 장엄한 닫집을 달았는데 천개 각부를 후대에 보수하였으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물이나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는 아름다운 건물로 당시의 건축기법을 잘 살필 수 있다.
각연사에는 통일대사탑비와 석조비로자나좌불상 등 다양한 불교문화재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각연사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있어서
하늘 감옥에 있다고 하여 천옥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하늘 감옥...
감옥이라고는 하지만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파노라마로 보면 그 느낌을 더 잘알 수 있다.

 

 

 

비로전에 들르기 전에 먼저
언덕 위에 있는 비를 보러 올라갔다.

 

 

 

머리가 없는 거북이...
얘는 뭘까 했더니
비석이 놓였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비문도 없고 머리도 사라져버린 쓸쓸한 모습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모습 만으로도 남다른 느낌이 든다.
머리는 따로 만들어 올려 놓았는데
아마도 그 모양이 너무 훌륭해서 누군가 달랑 머리만 가져간것 같다고 했다.
누구의 비석인지... 비문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석조 귀부 만으로도 대단한 고승의 비석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비석이 놓였던 곳에 지어졌을

건물도 규모가 꽤 컷을 것으로 추측되는 기단이다.

 

 

 

머리가 사라진 귀부...ㅜ.ㅜ
발톱이나 몸통의 조각들이 내가 보기에도 훌륭하고 아름답다.

 

 

 

석조 귀부에서 조금더 위로 올라가니 또다른 석탑이 보인다.
그 모습은 먼저 보았던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규모도 조각의 아름다움도 미치지 못한다.
단지 귀부의 머리 부분을 보면 사라진 머리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추측하게 해준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보물 제1295호 (1999년 6월 23일 지정)
고려 초기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탑비는 각연사에서 동남쪽 약 1㎞ 지점에 있으며,
여기에서 동남쪽 보개산 주봉을 향해 올라가면 산마루에 통일대사의 탑이 세워져 있다.
통일대사는 고려 전기에 중국유학을 다녀온 학승으로 당대에 명망이 높았다.
입적후 고려 광종은 ‘통일대사’란 시호를 내렸고, 당대의 문장가인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
여의주를 문 용머리 거북받침돌(귀부) 위에 비문은 윗 부분만 조금 판독될 정도로 마멸되어
3,500여자 해서체 가운데 260자 정도만 보인다.
구름과 어우러진 4마리의 용틀임 장식 머릿돌(이수)에는 보주(연꽃봉오리 모양 장식)가 놓여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더 올라가면 통일대사탑이 있다는데
시간상 여기서 비로전을 보러 다시 돌아내려가기로 했다.

 

 

 

[괴산 각연사 비로전]

충북유형문화재 제125호 (1982년 12월 17일 지정)

1982년 12월 17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433)을 본존(本尊)으로 한 비로전으로
불상이 조성된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23년 중수할 때 대들보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고려시대인 944년(혜종 1)에 중수된 기록이 있고
1648년(인조 26)에 중건되어 1655년(효종 6), 1899(광무 3)에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75년에 보수하면서 중도리를 빼는 등 도리 상부를 완전히 변형하여 원형을 잃었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각연사 비로전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전체적으로 단아하며, 당시의 건축기법을 잘 보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님들의 기도 시간이 끝난 비로전 내부다.
각연사 연못에서 나왔다는 불상의 모습이 보인다.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433호 (1966년 2월 28일 지정)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전체 높이 3.02m, 불상 높이 1.28m이다.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와 대좌가 모두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삼각형의 얼굴에 이목구비도 평범하다.
움츠린 어깨와 빈약한 가슴, 평면적인 하체, 그리고 간략하게 표현된 옷 주름에서
불상 특유의 비로자나불을 보여주면서도 얼굴과 몸, 옷주름에서는

10세기 불교조각양식위엄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불상의 양감이 줄어들고 모습이 온화해지는 반면,
불상 뒤의 광배와 불상을 앉힌 대좌의 장식이 화려해진 것은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는 석조여래좌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9세기의 전형적인 이 엿보인다.
석굴암 본존불 이후의 조각양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 보물 제1370호 (2003년 03월 14일 지정)
[네이버 지식백과]

 

 

 

 

 

 

 

조용하고 아름다운 각연사 쪽마루에 앉았다.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도 좋을 듯하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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