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호텔 앞에는 여기저기 작은 꽃들이 피어있다.
심심한데 잠시 취미생활을 즐기기로하고
숨어있는 야생화들을 찾아 나섰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멋진 호텔을 기대했는데
아쉽게 산 중턱에 숨어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아침 다시 도착한 두브로브니크 성곽 앞에서
성곽에는 크로아티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성곽 사이로 얼핏 보이는 파란 바다...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이다.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라구사(Ragusa) 공화국이 되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 무역의 중심지로 막강한 富(부)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 군주 아래 있다가(1205~1358)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도시가 요새화되고 지협의 각 측에 2개의 항구가 세워졌다.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고 엄격한 사회계급 체계를 유지하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1416)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다.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15년 빈 의회 결의안에 의해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년 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10월,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군이 3개월에 걸쳐 총 공격을 해와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가장 크게 손상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7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여름 축제도 다시 개최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달마티아 문학의 중심지로 크로아티아 문학의 일부를 이룬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파일 게이트(Pile Gate)
중심가인 스투라둔(Stradun)에 있는 시티월의 입구에 위치하며,
구시가지 서쪽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1472년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Paskoje Milicevic)가 건축했다.
고딕양식의 석조 건축물로, 아치형의 안쪽 문과 바깥쪽 문 2개로 구성된다.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석조다리도 포함되는데 이 다리는 1471년에 건축되었다.
게이트 안쪽의 아치 모양 문 위에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브라이세(St. Braise) 상이 놓여 있다.
이 상은 유명한 조각가인 이반메스트로비츠(Ivan Mestrovic)가 조각했으며
1537년에 건설된 나무로 된 도개교와 마주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정문을 통과해 들어서니 가장 먼저 보이는 City Map..
그리고 오렌지 나무
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Great Fountain)
1448년에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만들었으며
분수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중앙에 커다란 돔 모양의 석조 물이 있고 그 아래는 16면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서 물이 나오도록 설계되었다.
원래는 돔 위에 커다란 쿠폴라와 조각상이 장식되었으나
1667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도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분수의 물은 약 20km 떨어진 리예카 두브로바츠카(Rijeka Dubrovacka)에 있는
우물에서 공급받는데, 둘 사이에 놓인 수로는 크로아티아에서 건설된 최초의 수로이며
당시로서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시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오노프리오가 설계한 또 다른 작은 분수가 중앙로인
스트라둔(Stradun)의 끝에 위치한 타워에 있는데,
이것은 우아한 돌고래가 뛰노는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프란체스코회 수도원 입구
프란체스코회 수도원(Franciscan Monastery)
프란체스코회의 웅장한 수도원으로, 구시가지의 스투라둔(Stradun) 초입인 필레 게이트(Pile Gae) 왼편,
도시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원래의 수도원은 14세기에 건설되었는데 당시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물이었으나
1667년 대지진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현재의 수도원은 오래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장식되었고 섬세한 기둥 장식이 정원을 감싸고 있다.
남쪽의 커다란 현관은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조각 장식은 이 지역 최고 수준의 페트로비츠 형제가 일일이 제작했다.
현관의 웅장한 규모로 미루어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약 제조로 유명했고 지금은 제약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박물관에는 중세시대의 약 제조에 관한 역사는 물론 기구나 방법 등에 관한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에는 유명한 도서관도 있는데, 고대의 원고, 귀중한 단행본, 손으로 일일이 쓴 원고,
보물급 공예품 등 수많은 작가들과 역사가들의 작품 및 방대한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밤 엄청난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도 한가하고 조용해졌다.
내가 티셔츠를 들고 나왔던 가게들도 이렇게 조용하게 아침을 맞는다.
무언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골목
오래전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세도시 이야기 3편
주홍빛 베네치아의 골목이 생각났다.
아마 같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해양도시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발전한 도시라서 그럴까?^^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으로 아드리아해에 접해있는 아름다운 옛 도시이며 크로아티아 최대 휴양지다.
‘유럽문명의 상징’이며 '진정한 낙원’이라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두브로브니크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시가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시간의 흐름을 아름답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건축물은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보존되어있는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구시가지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건립된 해변의 웅장한
시티월(City Walls) 때문이다.
중세시대에 쌓아 올린 요새 성벽이 시가지를 감싸 안으며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있다.
약 2㎞ 정도 뻗어있는 이 성벽은 겉 모습도 아름답지만 내부에 있는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있다.
성 블라이즈 광장(St. Blaise Square)의 오란도(Orlando) 기사상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모습을 한 성당, 궁전, 미술관,극장, 학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북쪽으로 뻗은 290m 길이의 중심도로는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있으며
중심도로 끝 부분에는 원형의 오노프리오 분수 (Onofrio Fountain) 가 있고
오른쪽 건물 안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약국이 옛날 그 자리에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성 안에는 약 4,000여명이 살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종탑(City Bell Tower of Dubrovnik)
구시가지의 중앙로인 스트라둔(Stradun)의 동쪽 끝 루자 광장(Luza Square)에 위치한다.
우아한 모양의 종탑으로 높이는 35m이다.
1444년에 건설되었으나 파괴되어 1928년에 다시 건설되었는데,
맨 위에 있는 종만은 처음에 건축했을 당시인 15세기 것이다.
탑은 맨 위는 왕관 모양이고 그 밑에는 사방이 아치형으로 뚫려 있다.
이곳에 커다란 종과, 양옆에 2명의 남자가 망치를 들고 종을 치려는 모습의 조각이 있다.
종은 유명한 주조자가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무게는 2톤이고 녹색을 띠고 있다.
종 밑에는 굴뚝처럼 긴 모양의 시계가 놓여 있다.
시계는 숫자가 표시되지 않고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양으로 시간을 알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성블라이세 성당(Church of St. Blaise)
구시가지의 중심가인 스트라둔(Stradun) 거리 광장에 위치하며,
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성당이다.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입구 위에 그의 조각상이 서 있다.
1368년에 건립되었으며 1369년에 화재가 났고 1667년 대지진 때 파괴되었다.
지금의 바로크 양식 건물은 1706년에 시작하여 1717년에 완공되었으며,
베네치아의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Marino Gropelli)가 지었다.
도시의 가장 핵심 되는 랜드마크로 도시인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1971년에 지역 예술가들이 창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몄다.
정면 계단에서는 도시의 주요한 행사인 새해 전날 행사
또는 여름페스티벌의 오프닝 등이 개최된다.
성 블라이세를 기리는 페스티벌은 1972년부터
매년 열리는데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오랜 전통이다.
스트라둔 거리(Stradun)
구시가지의 중심거리로 서쪽에 있는 파일 게이트(Pile Gate)에서 시작하여
동쪽의 플로체 게이트(Ploce Gate)까지 이어진다.
1468년에 건설되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포장되었고 도로의 총길이는 약 280m이다.
하루 종일 관광객과 사람들로 가득찬 활기찬 곳이며
대리석 바닥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인해 매끄럽게 닳았다.
스트라둔은 '거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어 '스트라다’에서 비롯되었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1층은 상점,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등으로 사용하고 위층은 대부분 주거용 집이다.
이전에 스트라둔 거리는 화려한 궁전들로 가득 찼으나 모두 지진으로 인해 모두 파괴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667년 대지진 이후에 들어섰다.
이러한 이유로 주거용 건물이 빨리 들어서야 했기에 정부의 복구 프로그램 일환으로
건물의 높이와 건물의 외관 및 출입구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건설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Dubrovnik Cathedral)
구시가지에 위치한다.
원래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건축되었고
1667년 대지진에 의해 파괴되자
1672년부터 1713년까지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드레아 불파리니와 파올로 안드레오티가
로마-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했다.
가운데 돔 모양의 지붕이 높이 솟아올라 있어 아름답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St. Blaise)의 유물을 포함한
수많은 보물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금으로 된 작은 보석상자에는 그의 유골과 발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 외부는 고급스러운 회색으로 되어 있고 성인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었다.
내부는 밝고 바람이 잘 통하게 디자인했으며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장식으로 치장했고 벽화로 마감하였다.
주 제단은 금색의 플립티크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티탄(Titan)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졌고
옆 보조제단은 보라색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렉터스 궁전(Rector's Palace)
1435년 두브로브니크 수로와 분수를 건설한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건축했다.
후기고딕과 초기르네상스양식을 혼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귀족들을 위한 업무와 종교행사 때만 사용하였다.
총격으로 심하게 부서지고 1667년 대지진으로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된 후 17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보수되었다.
궁전 정면에는 기둥이 늘어서 있고 교회의자처럼 장식한 석조벤치가 놓여 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었는데,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 기간에는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2층은 현재 시 박물관으로 사용하는데 라구사공화국(Republic of Ragusa) 시절의 유물들을 전시한다.
특히 1만 5000점의 회화작품 중 대부분은 베네치아와 달마티아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네이버백과사전에서)
렉터스 궁전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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