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쯤 씨엠립 국제 공항에 내렸다.
입국 수속시에 급행료 1달러를 내지 말기로 하고 줄을 섰다.
하지만 한국인 팀을 보자 세관원 한명이 너무 반가운 표정으로 빠르게 우리에게 왔다.
인당 1달러면 "빨리 빨리"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마 저 급행료를 만들어 낸 것도 한국인들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그냥 하염없이 기다려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사실 우리를 보며 너무 반갑고 착한 표정으로 달려온 남자의 표정이 좀 안쓰러워 보여서 동의를 해주었다.
정말 빠르게 입국 비자를 발급 받았다.
<Angkor Era Hotel 로비>
베트남 북부와는 너무 다른 기후를 보였다.
반팔을 입어도 후덥지근 할 정도의 더위가 느껴진다.
같은 대륙의 남과 북인데 기후 뿐아니라
사람들의 생김새도 완전히 다르다.
베트남 가이드는 베트남 아가씨들이 훠~얼씬 이쁘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캄보디아 여자 아이들의 눈빛이 참 이뻐 보였다.
선물을 받았다.
앙코르 맥주와 과일 바구니...
너무 배가 불러서 저 과알은 반만 먹고 두고 나왔다.
여름이 아니라 그럴까? 과일 맛이 별루였다.
일정이 바빠서 그런 줄 알았더니
시원한 아침에 많이 움직이는 게 더 나아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
푹 쉬고 나오려던 계획이 무너졌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호텔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에는 온갖 난들이 피었는데 나무에 기생을 시켜놓았다.
그리고 한 20분 쯤 달려 앙코르 유적지에 도착했다.
이해에 도움이 되라고 네이버에서 퍼 옮겼다.
앙코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여전히 복잡하고 어려운 건
아마도 동남아시아 역사를 전혀 배운 일이 없기 때문일것이다.
앙코르[Angkor]
앙코르(Angkor) 유적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산림 지역을 포함해 400㎢ 이상 퍼져 있는 이곳은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크메르 제국의 수도로서 훌륭한 유물을 지니고 있다.
유적에는 유명한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사원들과 바욘 사원(Bayon Temple)이 있는 앙코르 톰(Angkor Thom)이 있다.
유네스코는 이 상징적인 지역과 그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앙코르 유적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크메르 제국의 수도로서 훌륭한 유물을 지니고 있다.
앙코르에서 발달한 크메르 예술은 동남아시아의 많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발달 과정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
대체로 인도 대륙의 양식에서 발달한 크메르 건축 양식은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발달함으로써
다른 건축 양식과 확실히 구분되었다.
어떤 점에서는 독립적으로 발달했지만, 이웃한 전통 문화로부터 습득한 특징도 있었다.
그 결과 동양 예술과 건축학에서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었다.
9세기 초반, 현재의 캄보디아 영토에 있던 두 나라는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II)에 의해 통합되었다.
자야바르만 2세는 크메르 제국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다.
이 제국은 5세기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주요 세력이었다.
많은 유적지 가운데 하나는 거대한 호수인 톤레사프의 북쪽 캄보디아 중심부에 있는데,
이곳에 반세기 후 자야바르만의 아들 야쇼바르만(Yaśovarman)이 후에 앙코르라 불리는 야쇼다푸라(Yashodapura)를 건립했다.
야소다푸라는 15세기까지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첫 번째 수도는 일정한 기본적인 요소를 갖춘 크메르 수도의 전형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방어용 제방과 벽돌이나 돌로 건축되었으며, 성벽 안과 주변에는 거의 전적으로 나무로 지어진 세속적인 건물들도 많이 있었다.
롤루오스, 바콩(Bakong)의 국가 사원, 선조 왕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원인 프레아 코(Preah Ko)는 880년 무렵부터 건설되었다.
현재 이스턴 바라이(Eastern Baray)라고도 알려진 프놈 바켕(Phnom Bakeng)의 언덕 주변에 있는 사원은
이로부터 10년 후에 지어진 것으로, 크메르 수도의 또 다른 핵심이다.
앙코르에 두 번째로 수도가 건설된 것은 960년대에 라젠드라바르만(Rajendravarman)에 의해서였으며,
국가에서는 프레루프(Pre Rup) 사원을 세웠다.
라젠드라바르만은 이스턴 메본(Eastern Mebon) 사원을 이스턴 바라이의 중앙에 있는 인공 섬에 세웠으며,
반티아이 스레이(Banteay Srei)라는 정교한 사원도 세웠다.
라젠드라바르만의 아들인 자야바르만 5세는 프레루프(Pre Rup) 사원을 방치하고 1000년 경 새로 타 케프(Ta Kev) 사원을 축성하였다.
이후 수리야바르만 1세(Suryavarman I)는 자신의 왕궁과 사원, 피메아나카스(Phimeanakas) 주변에
어마어마한 방어 시설을 구축했으며, 거대한 웨스트 바레이(Western Baray)도 세웠다.
1050년에 그의 후계자는 새롭고 더욱 인상적인 바푸온(Baphuon) 사원을 만들었다.
후대의 왕들도 계속해서 기념비적인 건물들의 형태에서 새로움을 추구했고,
1113년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취임하자 건축물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비슈누(Visnu)에게 바치는 앙코르 와트를 건설한 것이다.
총 3층으로 된 거대한 사원은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본떠서 설계했다.
크메르의 기념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앙코르 와트는 담으로 둘러싸인 대규모의 지역 안에 세워져 있다.
1150년 무렵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자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압력이 잇따라 일어났고,
1177년에는 참족(Chams)에 의한 앙코르의 약탈이 정점에 이르렀다.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를 점령하고 있던 참족을 몰아내고 즉위한 후,
수도인 앙코르 톰을 재건하는 등 전례가 없는 건설 작업을 펼쳤으며 바욘 사원을 지어 부처에게 헌정하였다.
앙코르 유적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커다란 저수지를 바탕으로 한 관개 체계로,
이것은 그 후 크메르 제국의 수도와 통치자들에게 경제적인 기반 시설이 되었다.
<역사적배경>
9세기 초반, 현재의 캄보디아 영토에 위치했던 두 나라는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해 통합되었다.
자야바르만 2세는 크메르 제국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다.
이 제국은 5세기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주요 세력이었다.
많은 유적지 가운데 하나는 거대한 호수인 톤레사프의 북쪽 캄보디아 중심부에 있는데,
이곳에 반세기 후 자야바르만의 아들 야쇼바르만이 후에 앙코르라 불리는 야쇼다푸라를 건립했다.
야소다푸라는 15세기까지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도시, 수도’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nagara’에서 파생된 ‘앙코르’라는 이름은 후에 지어졌다.
첫 번째 수도는 앙코르 이전의 수도인 하리하랄라야(Hariharalaya, 지금의 롤루오스)였다.
중앙에 사원이 있는 수로와 나무로 된 궁전 등이 있었던 하리하랄라야는 일정한 기본 요소를 갖춘
크메르 수도의 전형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방어용 제방과 벽돌이나 돌로 건축되었으며, 성벽 안과 주변에는 거의 전적으로 나무로 지어진 세속적인 건물들도 많이 있었다.
고위 인사와 성직자들은 성벽 안팎에 힌두교 신, 특히 시바에게 헌정하는 사원을 국가 사원처럼 세웠다.
9세기 초반인 880년 무렵에는 롤루오스, 바콩의 국가 사원, 선조 왕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원인 프레아 코가 지어졌다.
이 가운데 롤레이(Lolei), 프레아코, 바콩 사원 등이 현존한다.
크메르 수도의 다른 핵심적인 특징은 롤루오스의 북서쪽에 10년 후에 지어진 사원에서 볼 수 있다.
현재 이스턴 바라이라고도 알려진 프놈 바켕의 언덕 주변에 있는 사원이다.
앙코르에 두 번째로 수도가 건설된 것은 960년대에 라젠드라바르만에 의해서였으며, 국가에서 세운 사원은 프레루프이다.
라젠드라바르만은 이스턴 메본 사원을 이스턴 바라이의 중앙에 있는 인공 섬에 세웠으며,
반티아이 스레이라는 정교한 사원도 세웠다.
라젠드라바르만의 아들인 자야바르만 5세는 프레루프 사원을 방치하고 1000년 경 새로 타 케프(Ta Kev) 사원을 축성하였다.
이후 수리야바르만 1세는 자신의 왕궁과 사원, 피메아나카스 주변에 어마어마한 방어 시설을 구축했으며,
거대한 웨스턴 바라이도 세웠다.
또한 시바의 신을 모시는 대규모 힌두교 사원으로, 프레아비히어 사원도 건립했다.
연이은 왕들은 기념비적인 건물들의 형태에서 새로움을 추구했고
1113년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취임하자 건축물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앙코르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수리야바르만 2세는 비슈누에게 바치는 앙코르 와트를 건설한 것이다.
이 시기부터 시작하는 중요한 기념물에는 톰마논(Thommanon)과 차우 사이 테보다(Chau Say Tevoda)가 있다.
1150년 무렵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죽자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압력이 잇따라 일어났고,
1177년에는 참족에 의한 앙코르의 약탈이 정점에 이르렀다.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를 점령하고 있던 참족을 몰아내고 즉위한 후,
참족을 공략하고 병합하여 현재의 캄보디아와 라오스, 타이 베트남 남부에 걸친 광활한 지역을 지배했다.
그는 수도인 앙코르 톰을 재건하는 등 전례가 없는 건설 작업을 펼쳤다.
각지에 대가람(大伽藍)을 건립하는 등 왕조 최후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가 죽은 후에 캄보디아는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15세기 전반에 크메르 제국이 끝날 때까지
중요한 기념비적인 유적은 더 이상 건설되지 못했다.
롤루오스(Roluos)와 반티아이 스레이(Banteay Srei)를 포함한 앙코르 유적 단지는
3세기 이상 착실하게 성장해 온 것이므로, 유적의 상징성과 전체적인 어울림을 고려해야 한다.
바욘 사원과 앙코르 와트 같은 걸작을 포함해 다른 건축물들도 거대한 호수와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벽돌과 돌로 만들어진 기념물 사이에 있는 밀림 지역에는 크메르의 문화를 이해하고
해석·연구하는 데 큰 중요성을 갖는 고고학적 유물이 묻혀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앙코르 유적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커다란 저수지를 바탕으로 한 관개체계로,
이것은 그 후 크메르 제국의 수도와 통치자들에게 경제적인 기반 시설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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