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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09 서유럽

단테의 생가

by 포도주빛 바다 201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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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성당이 있는 광장을 빠져나와

식사를 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가다가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이 좁아 보이는 골목에도 버스(마을 버스 같은...^^)가 통행을 한다.

 

 

골목에 있는 건물 창문에는 이런 창살들이 설치되어있다.
이런 튼튼해 보이는 창살이 있는 건물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스릴 무렵 생겨나기 시작한 은행이었다.
그러니까 예전 은행 건물이다.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

말을 묶었던 고리라고 했다.

 

 

 

 

 

식당입구...

 

 

단테가 베아뜨리체를 처음 만났다는 성당 내부 모습

(손떨림 보정 기능의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ㅜ.ㅜ)

 

 

 

 

 

 

 

 

 

 

 

 

 

 

 

단테의 집 박물관 입구

 

 

단테의 생가

 

 

단테의 흉상


단테는 피렌체 출신으로 전인류에게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 Divina Commedia》(1307?∼1321)을 남겼다.

그는 피렌체의 겔프당(黨:敎皇派)의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그가 9세 때에 마치 천사처럼 청순한 베아트리체를 연모하였음이 시집 《신생 Vita Nuova》(1293?)에

나타나 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그의 시의 형성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당시 피렌체는 흑 ·백(黑白) 양당으로 갈라져, 단테는 백당에 소속하여 흑당의 힘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흑당은 로마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의 야심을 이용하였다.

흑당에 동의해서 카를로 바르와의 군대가 피렌체로 입성하여, 단테는 흑당에 의하여 추방되었다.

1302년 1월에는 독직죄로 고소당하여 무거운 벌금과 2년간의 유형(流刑)을 선고받았으며,

다시 2개월 후에는 영구유형을 선고받고, 시정부(市政府)에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통고를 받았다.
1318년 이후 라벤나의 영주 G.N.폴렌타는 유랑시인 단테에게 안식할 땅을 제공하여 세 아들은 성직자가 되고, 단테는 《신곡》을 완성하였다.

최대의 걸작 《신곡》은 단테의 문학적 ·종교적 사상의 결정(結晶)으로, <지옥편>은 1304∼1308년에,

<연옥편>은 1308∼1313년에,<천국편>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7년 동안에 완성하였다.
그러나 1321년 9월 라벤나 영주 폴렌타의 외교사절로 베네치아에 다녀오는 길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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