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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라보기/2013~2014년

2013, 연수- 서산 해미읍성

by 포도주빛 바다 2016.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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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연수를 떠난다.
정말 바쁘게 달려온 한해가 정리되는 것 같기도하고...ㅋ
마무리를 하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 출발한 시간이 12시 반쯤...
나누어준 김밥 한줄을 먹고 잠깐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든것 같은데
어느덧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서는 느낌이 든다.
두시간 남짓 만에 도착했단다. 서산의 해미읍성에...


주차장에 내리며 보이는 서곽이 눈에 들어온다.
꽤 규모가 커보인다.
좀 썰렁한 맛도 있지만 그래도 어~! 이건 뭐지? 호기심도 갖을만 하다.


서해안을 지켰던 성곽
낙안읍성, 고창읍성과 함께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해미는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조선 태종 14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성을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년)에 완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높이 5m, 둘레 약 1.8㎞로, 동·남·서 세 방향에 문루가 있으며
원래는 두 개의 옹성과 동헌, 객사 두 동, 총안, 수상각 등이 있는 매우 큰 규모였으나
현재는 동헌과 객사만 복원해 놓았다.
성벽 주위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 데 이용했다고 전해지지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남문으로 들어섰다.


문 입구에 보이는 해미읍성이라는 팻말...
요즘 디자인이지만 나름 눈에 띈다.



海美邑城
사적 제116호. 지정면적 194,083㎡, 둘레 2,000m.
현재 남문인 진남문(鎭南門)과 동문·서문이 있고,
성내에 동헌(東軒)·어사(御舍)·교련청(敎鍊廳)·작청(作廳)·사령청(使令廳) 등의 건물이 있다.
본래 해미는 1414년(태종 14)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이곳으로 이설된 뒤
1651년(효종 2) 청주로 옮겨질 때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성하여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절도사영은 해미현의 동쪽 3리에 있었으며,
석성으로 둘레 3,172척, 높이 15척, 우물 세 군데, 군창이 설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읍지에는 읍성의 둘레가 6,630척, 높이 13척,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이 380첩(堞),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이 두 곳,
남문은 3칸이며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었고, 2층의 다락을 지었으며,
동문·서문도 3칸이나 북문은 없고, 우물이 여섯 군데이며, 성밖에 호(壕)는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의 병마절도사영과 읍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병마절도사영에는 이순신(李舜臣)이 1579년(선조 12)에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가장 잘 남아 있어서 대표적인 표본으로 삼기 위하여
성안의 민가와 학교 등을 철거하고 성벽의 보수 등 연차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즉,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客舍)와,
현재의 아문(衙門)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官衙)를 둘러쌌던 돌담의 자취가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루에 올랐다.
성내가 한눈에 보인다.
저 앞에 보이는것이 관아이고 저기 보이는 나무가 신자들을 매달았던 나무이고...
ㅎㅎㅎ 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았다.


저기 보이는 작은 초가가 주막이란다.
벌써 일부 선생님들은 저리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긴 구름이 잔득 끼어서 서늘하고 으실으실 나도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처음 와본 곳이고 앞으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이니 제대로 보고 가야지...
해설사가 벌써 나와 우리를 맞는데...왠지 그냥 부장님을 따라가는게 더 나을듯 하여
모범생을 포기하고 따라 나섰다.


대로 정면에 관아가 보인다.


이대로 양옆으로는 상가나 민가가 늘어서 있었겠지만
아직 복원이 덜 되었는지 썰렁하게 관아만 덩그머니 서있다.


관아





민가 대신 대로 주변에 이런 옛 무기구들을 전시해두었다.


민가 터



저기 높은 계단 위로 무슨 건물이 보인다.


읍성의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청허정에 올라왔다.



널직한 터를 둘러싸고 소나무가 멋지게 서있다.


한옥과 소나무는 정말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ㅎㅎㅎ


다시 아래로 내려왔더니 울 선생님들 노신다.
하하하 호호호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소리도 크다.
그래서 다가 가봤다.


아...투호?놀이다.


정말 열심히 던지셨는데 제대로 들어가는게 없다.
어딜 가든 잘 노신다. ㅎㅎ 부럽다.


뒤로 돌아보니 작은 건물이 보인다.
안을 슬쩍 들여다 보았더니 예사롭지 않다.


옥사란다.
천주교인들이 이 옥사에서 많이 죽임을 당했던 모양이다.



선생님 한분이 나더러 엎드려 보란다.
절대 그럴 수 없으니 샘이 엎드리시면 제가 볼기를 쳐드리죠 했더니 진짜 엎드리신다.

카메라 누르는 소리에 정말 놀라셔서 벌떡 일어나셨다.
ㅎㅎㅎ 안찍어거든요~




감옥도 남녀 차별이네... 남자는 왜 칼차고 있는 거야? 하신다.
설정을 하다 보니 그런거 아니겠느냐 했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차별에 민감해져가는 것 같다.




옥사 바로 앞에 키큰 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회화나무란다.


회화나무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관아가 있는 해미읍성으로

1,000여 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잡혀와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는데
고문당했던 회화나무에는 지금도 그 흔적으로 철사줄이 박혀 있고
태형으로 죽인 자리에는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 옆으로 순교 기념비가 보인다.
그리고 슬슬 걸어 입구로 나왔더니 아직 다른 모범선생님들은 수업중이다.
주변을 얼쩡 거리고 있는데 아까 봤던 초가로 가서 동동주 한잔 마시고 나오라고 우리 부장님이 부르신다.
에이 모르겠다 날씨도 추운데 슬쩍 낑겨 들어가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생지부 부장님이 사주시는 동동주 반잔에 김치 두부 보쌈을 얻어먹고 일어섰다.
정말 오랫 만에 먹는 동동주 맛이 좋다. 아~!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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