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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10 동유럽

프라하-구시가지

by 포도주빛 바다 201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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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Praha]

영어 프랑스어로는 프라그(Prague), 독일어로는 프라크(Prag)라고 한다.
체코 중서부, 블타바강(江:몰다우강) 연변, 라베강(江 엘베강)과의 합류점 가까운 곳에 있다.
체코 최대의 경제·정칟문화의 중심도시이다. 비교적 따뜻하며 습도가 낮고 연 강수량은 508mm이다.
프라하분지에는 BC 4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슬라브인(人)이 들어온 것은 5·6세기로 9세기 말에 성이 축조되었다.
11세기에는 구(舊)시내 광장에서 교역이 시작되었고

12세기에는 이미 중부유럽 최대의 도시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14세기에 이르자 카를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시는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당시의 인구는 4만으로 추정된다. 14~15세기에는 후스전쟁의 싸움터가 되었다.
15~16세기에는 고딕 건축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정치적인 의미는 상실하였다.
17세기에는 바로크 건축이 번성하였고 18세기 말부터 다시 수공업 등이 일어나
경제적으로 회복되어 인구도 8만을 헤아렸다.
그 후에도 인구는 늘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한 이래 수도가 되어왔다.
제2차세계대전후 1948년의 이른바 2월 사건, 1968년 1월의 '프라하의 봄’으로 부르는 자유화운동이
소련 등 바르샤바 조약군(軍)의 침입으로 짓밟힌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1993년 1월 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어 체코의 수도가 되었다.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보이는 블타바강과 구시가지

 

프라하 구시가지

 

 

다리위의 조각상

 

 

다리위의 악사

 

구시가지 쪽 카를교 브릿지 타워

 

블타바강

 

카를 교 건너편에서 바라본 프라하성과 성비투스 대성당

 

 

 

바츨라프 광장으로 가기 위해 트램을 타러 이동하는 길에서

 

 

트램을 타러 가는 길에 보이는 프라하성과 카를교..

 

블타바강
보기엔 굉장히 지저분해 보이지만 실제로 물고기가 살수 있을 만큼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카를교
강 서쪽의 왕성(王城)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로
보헤미아왕 카를4세 때(1346∼1378)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다.
후에 양쪽 난간부에 상인들의 석상을 세웠고, 다리 양쪽에는 탑이 있는데 그 사이의 다리 길이는 약 500m이다.
다리 서쪽은 칸파라고 하는 작은 운하가 있는 지구로 소(小) 베네치아라고도 한다.

 

트램이 다니는 전차길

 

동유럽 특히 프라하에서 삼성의 인기는 꽤 높은편이라고 한다.
트램은 온통 삼성 광고로 도배 되어있다.

 

 

드디어 트램이 도착...
두정거장을 타고 가기 위해 우린 다섯 정거장 정도를 걸은 느낌이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바츨라프 광장

길이는 750m, 너비는 60m이다.
'프라하의 봄' 사건 당시 점령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100여 명이 희생당한 장소이다.
지금은 프라하 최대의 번화가이며, 상업·교통·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메이데이 등과 같은 축제의 회장으로 사용되며, 역사상으로는 자주 대사건의 무대를 이루기도 했다.
광장이 시작하는 곳에는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聖)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있는데
여기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이 기마상 아래에는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광장 정면에는 세계 10대 박물관으로도 꼽히는 프라하 국립박물관이 있다.

 

 

프라하 국립 박물관

 

 

 

광장을 둘러싼 거리의 모습

 

 

 

에스타테스 극장 [The Estates Theatre]

스타보브스케 극장(Stavovske divaldo)이라고도 한다.
1783년 노스티츠(Nostitz) 백작이 독일 연극과 이탈리아 오페라를 상연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본래의 이름은 백작의 이름을 본떠 노스티츠 극장이었다.

 

1787년 10월 29일 모차르트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가운데

<돈 조반니 Don Giovanni>가 초연되었고,
1791년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을 기념하여 모차르트의 오페라
<라 클레멘차 디 티토 La Clemenza di Tito>가 공연되었다.
1834년, 현재 체코의 국가가 된<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Where Is My Home>가 처음으로

이 극장에서 울려 퍼졌다.
1948년 Tyl 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0년 8년에 걸친 보수 작업 끝에 다시 현재의 이름을 되찾았다.
모차르트의 일생을 그린 영화<아마데우스 Amadeus>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항시 공연되며 그밖에 발레와 클래식 공연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네이버에서)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드디어 구시가지 광장까지 이르렀다.
낯익은 얀 후스 동상도 보이고...

 

 

광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틴교회...
예전에 왔을땐 이 커다랗고 눈에 띄는 건물이 절대 안보였는지...
돌아와서 아무리 사진을 뒤져보아도 흔적도 없었다.
마치 나에겐 안보여줄 것 처럼 꼭꼭 숨어버렸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틴성당을 발견하자 마자 얼마나 반갑던지 한없이 셔터를 눌렀다.
도망가기 전에 잡아놓으려고...ㅎㅎ

 

예전엔 크리스마스 마켙으로 붐비던 광장이

이날은 월드컵 거리 응원을 위한 무대와 포장마차(?)로 정신없다.
아마 현대에서 유럽 곳곳의 광장에 이런 무대를 설치한 모양이다.
우리가 프라하에 도착한 날은 월드컵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얀 후스 동상
얀 후스는 체코의 종교 개혁자로서 성서를 유일한 권위로 강조하고
고위 성직자들의 세속화를 강력히 비판하였다.
또한 체코 민족운동의 지도자로서 보헤미아의 독일화 정책에 저항했다.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커다란 의분을 불러일으켜 1419∼1434년의 후스전쟁을 유발시키기도했다.

(네이버에서)

 

지난번에 왔을땐 왜 이교회를 볼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광장 어디서나 한눈에 들어오는 외관과 크기를 지니고 있는 교회다.

 

틴성당

프라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교회로, 1365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변형을 가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었다.
외관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고, 특히 80m 높이까지 치솟은 2개의 첨탑은
이 교회의 상징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어두운 느낌을 준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시청사 동쪽 맞은편, 골즈 킨스키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다.
북쪽 벽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제단과 아름다운 동북쪽 출입문이 유명하며,
황금 성배(聖杯)를 녹여 부착한 첨탑의 성모마리아상(像), 고딕양식으로 조각된 실내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상, 백랍으로 만든 세례 받침 등도 성당의 명물로 꼽힌다.
성당 안에는 루돌프 2세를 위해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브라헤가 묻혀 있다.
클래식 연주회가 열리기도 하며, 교회 바로 옆에는《성(城)》의 작가 카프카의 생가가 있다.
(네이버에서)

 

프라하 구시청사 천문시계 [Prague Astronomical Clock]

프라하 구시청사 벽에 걸려 있다.
1410년 시계공 미쿨라시(Mikulas of Kadan)와 뒷날 카를 대학의 수학교수가 된 얀 신델(Jan Sindel)이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1490년 달력이 추가로 제작되고, 외관이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1552년 시계 장인 얀 타보르스키(Jan Taborsky)가 시계를 수리하면서
원래의 제작자로 하누시(Hanus)를 언급하였다.
이후 더 이상 똑같은 시계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누시의 눈을 멀게 만들고,
그의 죽음과 함께 시계 또한 작동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졌는데,
오늘날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1552년 이후 시계는 여러 번 작동을 멈추었고 그때마다 수리가 뒤따랐다.
17세기에 움직이는 조각상을 덧붙이고, 1865년과 1866년에는 복구작업 끝에 사도들의 형상을 추가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말, 전쟁의 영향으로 일부가 파손되면서 다시 작동을 멈추었으나
이후 보수를 거듭한 끝에 1948년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프라하의 명물로 손꼽히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시계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시계는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 시계를 칼렌다륨, 아래쪽을 플라네타륨이라고 부른다.
칼렌다륨은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 원은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제작 당시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을 보여준다.
매시 정각이 되면 칼렌다륨 오른쪽의 해골 모형이 움직이면서
12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식당앞 풍경

 

프라하 화약탑 [Prague Powder Tower]

프라하역(驛)에서 남쪽으로 500m 지점에 프라하 박물관이 있고,
이 곳에서 다시 바츨라프광장과 무스테크 광장을 지나면 오른쪽에 화약탑이 있다.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는 지점으로, 옆에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시민회관이 있다.
1475년 지금의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 성문 가운데 하나이자, 대포 요새로 건설되었다.
이후 총기 제작공이자 종(鐘) 주조공인 야로스(Tomas Jaros)의 거처 겸 작업실로 개축되었다가,
루돌프 2세 때인 17세기 초에 연금술사들의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이면서 화약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딕 양식의 탑으로, 높이는 65m이며, 총 1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라하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옛날에는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소이자, 외국 사신들이 프라하성으로 들어올 때는
꼭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이용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연금술이나 종 주조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약탑과 나란히 있는 길이 신시가지, 탑을 지나 서쪽 길이 구시가지가 각각 시작되는 곳이다.
인근에 프라하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관광지인 프라하성, 바실리카, 황금소로(黃金小路) 등이 있다.
(네이버에서)

 

프라하시민회관 [The Municipal House]

연주회장과 전시장, 레스토랑 등을 포함하여 500여 실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시설이다.
보헤미아 왕조의 궁궐이었던 기존의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1905년 부터 1911년에 걸쳐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건축 당시 알폰스 무하, 카렐 슈필라, 얀 프라이슬러 등의 체코 미술가들이 참여하여
아르누보의 내부 인테리어를 완성하였다.
건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는 체코의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의 개막과 폐막 공연장으로
유명한 스메타나홀이다.
축제의 첫날인 매년 5월 12일 저녁, 스메타나의 교향시<나의 조국>의 연주와 함께 개막 공연이 시작된다.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이 선포된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현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주무대로 이용되며, 음악회 외에도 연극, 발레, 오페라 등을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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