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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17 북독일과 베네룩스

독일-베를린(슈프레강유람선)

by 포도주빛 바다 2017.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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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방문 3번 만에 드디어 베를린에 왔다.

엄청 기대가 된다.

 

 

베를린 [Berlin] 

베를린은 독일 16개 연방 주에 속하는 도시주이자 독일의 수도이다

2009년 기준으로 면적은 892에 이르며, 342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t)901억 유로(Euro)이다.

 

독일 동부 저지(低地)에 있다

슈프레강()이 구불구불하게 시가지를 관통하며 시가지 서부에서 하펠강과 합류한다

뮈겔베르크산(115m), 셰퍼베르크산(103m), 하펠베르크산(97m), 크로이츠베르크산(66m)은 

모두 말단퇴석(末端堆石)의 사력구(砂礫丘)이다.

 

넓은 숲과 많은 호수를 안고 있어 베를리너 루프트(베를린의 공기)’라고 노래로 부를 정도로 공기가 맑다

북위 52.5°에 있어 겨울은 몹시 춥고, 여름도 서늘하다

하펠강은 엘베강에 흘러들어 북해와 연결되고, 오데르-슈프레 운하에 의해 발트해()와도 연결되어

2차 세계대전 전에는 1,000t 급의 화물선이 빈번히 드나들면서 독일 제3의 내륙항 구실을 하였다.

 

베를린이라는 지명이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2세기 말 13세기 초지만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701년 프로이센왕국의 수도로 결정되면서부터였다

이때는 아직 독일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독일은 애국주의 작가들의 시에나 등장하는 염원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프로이센도 독일의 통일을 꿈꾸는 여러 영방국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7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1871,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면서 

베를린은 비로소 신생 독일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바로 제2제국이다

그 후 베를린은 제1차 대전의 개전과 패전, 바이마르공화국의 동요, 히틀러의 집권을 차례로 목격했다

히틀러가 제3제국의 탄생을 선포했을 때도 베를린은 여전히 독일의 수도였다

그러나 194558일 무조건 항복과 더불어 독일의 수도로서 베를린이 누려왔던 영광도 

채 한 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승전 연합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군대가 분할 통치하면서 베를린은 위기에 처했고

그 위기는 3년 만에 베를린 분할로 이어졌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지만, 서독은 서베를린이 아닌 본을 수도로 택했다

신생국가 서독의 수상 아데나워(Konrad Adenauer)가 표방한 친()서방정책 때문이었다

이후 서베를린은 1990년 동서독이 다시 통일될 때까지 동독이라는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 고립된 섬처럼 

남아 있었다

따라서 독일의 통일은 곧 베를린의 통일이자, 수도로서 베를린의 위상 회복을 뜻했다.

 

1991년 6월 20(Bonn)에 있는 독일 연방 하원 의사당에서는 

무려 의원 104명이 앞에 나와 소견을 밝히는 가운데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행정부와 의회의 소재지를 지금처럼 본에 둘 것인가아니면 베를린으로 옮길 것인가

이것이 이날 토론의 쟁점이었다

11시간의 마라톤 토론이 끝난 후 드디어 투표가 이뤄졌다. 338표 대 320베를린이 이겼다

이로써 1년 전 통일이 이뤄질 때 베를린을 수도로 삼기로 했던 합의가 최종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1년 5베를린 중심부에 총리 공관이 개관되면서 

역사적인 베를린 천도(遷都)는 마무리되었다.

수도가 된 뒤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한 베를린은 통일 이전 분단의 상징으로 통한다

서 베를린은 서독 기본법의 적용을 받았으나(1950년 독일연방 가입

4대국 협정에 따라 특수한 지위를 누렸으며, 동 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다

1990년 통일 이후 통일 독일의 수도로서 베를린은 명실공히 세계적 도시로 성장하였다

199991일부터 연방의회 및 연방정부는 베를린으로 이전, 공식 업무를 개시하였다

6개 부처는 본에 잔류하였다. 전자, 기계, 식품, 주류, 제약, 섬유업 등이 발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를린 전승기념탑

 

전승기념탑(Siegessaule)

전승 기념탑 꼭대기의 황금빛 여신을 베를린 사람들은 황금의 엘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원래는 승리의 여신인 빅토리아

키가 무려 8.3m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무게만도 무려 35

프리드리히 드라케(Friedrich Drake)가 조각한 것이다.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그로쎄 티어가르텐(GroBe Tiergarten)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전승기념탑은 

1873년에 하인리히 슈트라크스(Heinrich Stracks)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덴마크(1864), 오스트리아(1866), 프랑스(1870~71)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이었다

탑 내부에 있는 285개의 계단을 오르면 베를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다미엘처럼 황금의 엘제 어깨에 앉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67m 높이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갈 수 있으니, 다미엘의 기분을 비슷하게 느껴볼 법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통령궁- 벨뷔궁[Bellevue Palace ]

 

벨뷔궁[Bellevue Palace ]

슈프레강(Spree R.), 베를린 전승기념탑(Berliner Siegessäule),

독일 제국의회 의사당(Reichstagsgebäude),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 등과 인접해 있다

벨뷔(Bellevue)는 프랑스어로 전망이 좋다는 뜻으로

이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슈프레강의 전경이 아름다워 벨뷔궁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1786년 프리드리히 2(Friedrich II.)의 동생인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Ferdinand von Preußen)왕자를 위해

건축됐다

건축가는 필립 다니엘 보우만(Philipp Daniel Boumann)이다

본관의 양 옆으로 이어진 별관은 각각 여자의 날개(Damenflügel), 슈프레 날개(Spreeflügel)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궁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의 넓이는 약 20헥타르이다

1918년까지는 왕자의 거처로 사용됐다

1930년대 중반까지 민족학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나치스 시대에 게스트 하우스로 이용됐다

2차 세계대전 말미에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다가 1950년대에 재건됐다

독일 분단 시절 서독의 수도가 본(Bonn)으로 옮겨지면서 대통령의 두번째 거처가 됐다

독일 통일 이후 1994년부터 다시 독일 대통령의 정식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Reichstag]

 

의사당 꼭대기 돔에는 일반인들이 올라가 의사진행 상황을 볼 수 있는데...

국회는 늘 국민 발 아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국회 방청을 위해 길게 줄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Reichstag]

독일 의사당의 다채롭고 파란 많은 역사는 이러한 종류의 건축물의 상징적인 힘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독일 의사당은 1894년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건축가 파울 발로트(1841~1912)가 지은 

2제국의 제국 의회 의사당이었다

독일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력하게 표현하고자 한 건물로

각 지방의 대표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1933년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그 책임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덮어씌우려 한 나치당 과격분자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간발의 차로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대참사는 면했으나 이어진 연합군의 공습으로 또다시 심하게 파손되고 말았다

정부 청사로 사용하기 위해 1958년부터 1972년 사이에 어찌어찌 복구를 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제국 의회 의사당은 다시 하나가 된 독일의 

입법부, 연방 의회의 본거지가 되었다

1995년 환경 설치 예술가 크리스토와 진-클로드는 의사당 건물 전체를 하얀 폴리프로필렌 직물로 

모조리 싸버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거슬리는 공명이 알려지게 하였다

1999년 영국의 건축가 포스터 경(1935년생)은 벽만 남기고 건물을 모두 뜯어낸 뒤 

내부의 안마당 위로 가벼운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돔을 덮었다

그 양옆으로는 나선형 경사로를 매달아서 공사 중에도 의회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포스터의 진정한 위대함은 빛의 활용에서 드러난다

거울로 덮은 환기통이 돔에서 내려와 아래층의 조명과 환풍을 동시에 해결해준다

밤에도 조명을 환하게 밝힌 돔은 독일 민주주의의 횃불처럼 빛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방수상부  [Bundeskanzleramt]

 

 

 

 

 

각각의 작은 비석은  나치에 의해 살해 당해 죽은 반체제 인사들을 나타낸다 . 

 

 

 

 

 

 

Gypsies Memorial  Sinti und Roma Denkmal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집시들 추모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다.

 

 

 

 

 

 

슈프레강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

이른 아침이라 쌀쌀하고 춥다.

 

 

 

쌀쌀한 날씨에 유람선에 올랐다.

배 아래는 따듯하고 편안해 보인다. 

따듯한 커피한잔 마시며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비가 온다고, 겨울이라고 배아래서 편안히 있었던 적이 있던가..ㅎㅎ

추위에도 위로 올라왔다. 시야가 환하게 들어 나는게 좋다.

그냥 보자.. 보이는대로..

 

 

 

 

 

 

 

 

 

 

 

 

 

 

 

 

 

 

 

 

 

 

 

 

 

 

 

 

 

 

 

 

 

 

 

 

 

 

 

 

 

 

 

 

 

 

 

 

 

 

 

 

 

 

 

 

 

 

 

 

 

 

 

 

 

 

 

 

 

 

 

 

 

 

 

 

 

 

 

 

 

 

 

 

 

 

 

 

 

 

 

 

 

 

 

 

 

 

 

 

 

 

 

 

 

 

 

 

 

 

 

 

 

 

슈프레강 유람선에서 내렸다.

이젠 식사하러 고고~

 

슈바인 학센

 

한국에선 절대 안먹는 족발 요리닷~!!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맥주 덕분에 나름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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