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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09 서유럽

로마-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by 포도주빛 바다 201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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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소나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보러 가는 길에는 길게 우산소나무가 서 있다.
2천년전 카이사르가 로마병사들이 진군을 할때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길게 자라 꼭대기만 무성한 우산 소나무를 심어 진군을 도왔다는 글을

로마인 이야기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좁은 오솔길 처럼 보이는 길에

우산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길은 아마 로마시대 부터 사용하던 길이었다고 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남쪽에서 본 개선문)

 


콜로세움 바로 옆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서 있다.
이탈리아 어로는 '아르코 디 콘스탄티노'(Arco di Constantino)지만
고대 로마인의 언어였던 라틴어로는 '아르쿠스 콘스탄티니라고 불렀다.
312년에 원로원이 승자인 콘스탄티누스에게 바치기로 결의하여 세워진 개선문이다.
개선문 증정식은 즉위 10년 축하의 핵심 행사였는데 실제 공사기간은 2년 뿐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3' 중에서)

 

개선문의 상단 부분

 


개선문이 세워진 이곳에는

이미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개선문이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본형에 사용된 석재는 이 개선문이 지어진 4세기 초가 아니라

2세기 전반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아마도 기존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을 완전히 부수고
세로 지은 것이 아니라 목적에 벗어나는 장식만 제거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에게 바치는 헌사와 그 황제가 이탈리아에서 치른 전투를
묘사한 장면처럼 목적에 맞는 부조를 새겨서 그 자리를 메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을 모두 장식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다른 공공 건조물에서 장식을 떼어다가 덧 붙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3' 중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패치워크의 개선문'

 


그 결과 로마 제국 최후의 걸작 건축물로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4세기 초에 건조 되었지만 본체와 장식이 모두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을 가져다 붙인 '패치워크'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중앙과 좌우 아치형 입구 위쪽에 새겨진 부분은

4세기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티투스의 개선문

 


티투스 황제가 유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이문을 지나면 팔라티노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다.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과 에스퀼리노, 첼리오 언덕이

서로 마주치는 골짜기에 콜로세움이 서있다.
콜로세움은 우리가 오늘날까지 접할 수 있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 중 가장 웅대한 것이다.
로마가 창건된 이래 콜로세움 만큼

로마를 웅변적으로 상징하는 기념비는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네로 황제가 죽은 후 혼란스런 로마의 정세를 바로잡은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두 아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는
네로 황제의 궁전인 도무스 아우레아를 헐어내고, 그 땅에 공공시설을 세웠다.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는 원형경기장이 세워졌는데 그것이 콜로세움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콜로세움의 공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인데,
중세에 콜로세움이라는 별명이 붙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 옆에는 높이가 자그마치 35미터나 되는
네로 황제의 거대한 황금동상인 콜로수스가 세워져있었다.
나중에는 철거되었지만 콜로세움을 세울 당시는 황금동상을 그대로 두었었다.
콜로세움이라는 말은 바로 이 콜로수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반대편에서 본 콜로세움

 


반대편까지 가기도 힘들고

시간도 없는 관계로 예전 사진으로 대체~^^

 

콜로세움 입장표

 


콜로세움 입장을 위한 표를 받아들었다.
바티칸박물관이 휴관일이라 대신 콜로세움 내부 관람을 하기로 했다.
나야 뭐 바티칸은 고생고생하며 돌아보았던 곳이고 콜로세움의 내부관람은 처음이니
손해볼 일은 아니라 기분 좋게 표를 받아들었다.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을 찍혀주고 돈을 받는 로마병사들

 

 

 

콜로세움 내부

 


사실 사진으로 볼땐 들어가보면 뭐 볼게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들어서니 그 크기와 웅장함에 내가 압도 당하는 느낌이 든다.

 

 

 

콜로세움 외벽의 높이는 50여m이고,
타원형 평면의 장축 및 단축의 지름이 각각 188m, 156m ,
그리고 둘레가 527m이며, 경기장의 장축과 단축은 각각 86m, 54m이다.
또 공사에 사용된 크라베르티노 돌은 10만 제곱미터가 넘고,
돌 블록을 연결하는데 쓰인철근만 300톤에 달한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콜로세움의 설계를 살펴보면

외벽은 각 층마다 기둥의 양식을 달리하고 있는데
1층은 터스칸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 양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4층은 다른 층과는 달리 직사각형의 창문이 있는 벽체로 되어 있는데,
벨라리움, 즉 천막을 고정하던 장치가 아직도 남아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콜로세움의 지하 구조

 


콜로세움이 세워진 곳은 주변의언덕이 마주치는

저 지대이기 때문에 배수가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에는 '나우마키아'라고 불리던

모의해전을 즐길 정도로 배수시설이 완벽했다.
경기장에 물을 넣고 빼는 번거로움 때문에 나무마키아가 폐지 된 후,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경기장 아래에 미로와 같은 지하시설을 만들었는데.
이곳은 검투사의 대기실, 맹수우리, 무대장치 보관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콜로세움의 1층 회랑

 


아치들은 각각 번호를 매겨 출입구로 사용했는데
관중들의 입장권에는 그에 해당되는 출입구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콜로세움은 웬만한 도시의 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그런데 이 많은 관중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5분이 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콜로세움의 전경

 

 

 

 

콜로세움의 십자가

 


콜로세움은 거의 450년 동안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린 곳이기도 하다.
1790년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콜로세움에 순교지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여 이곳에 십자가를 세웠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콜로세움의 창 사이로

로마의 상징 같은 우산소나무가 보인다.

 

 

 

콜로세움에서 바라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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