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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09 서유럽

로마-포로 로마노

by 포도주빛 바다 201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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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에서 바라본 콜로세움과 포로로마노~
지난번 터어키를 방문했을 때는 에페수스 유적지에서도
가이드가 하나 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해주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페허만 남은 유적지가 훨씬 더 감동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포로 로마노는 예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고
멀찍이서 둘러보고 나오는게 고작이었다.
늘 그렇듯 참 아쉽다.

 

캄피톨리오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로마 공회장)의 유적
팔라티노 언덕의 동쪽 아래와 캄피톨리오 언거의 남쪽 아래에는 고대 로마의 폐허가 널려있다.
이곳은 2천 년 전 고대 로마의 영광과 번영을 대변해 주던 로마 공회장이 있던 곳이다.
로마를 창건한 로물루스가 사비니 여인들을 강탈해 오자, 그들을 구하러 온 사비니군은
팔라티노 언덕, 캄피톨리오 언덕, 그리고 퀴리날레 언덕과 비미날레 언덕이
서로 마주치는 습한 저지대에서 로마군과 대치했다.
사비니 군과 로마군이 화해한 다음 로물루스는 이곳을 흙으로 메워
백성들을 위한 모임의 장소로 사용했다.
지리적으로 주변의 언덕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물물교환을 하거나
종교행사를 치르기에 매우 이상적인 장소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중에서)

 

 

 

팔라티노 언덕

 

사투르누스 신전
주피터의 아버지인 땅과 농업의 신 사투루느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기원전 497년에 건축, 국가의 중요한 보물들을 보관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8개의 기둥은 4세기때 증축된 주랑현관의 기둥이란다.

 

셉테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가운데), 개선문 뒤의 삼각형 지붕이 원로원 건물

 

꽁꼬르디아 신전
기원전 367년 평민들도 집정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리키니우스 세스티우스법의 제정을 기념해서 세워진 신전이란다.

 

포카 황제 기념 원주
오른쪽 구석에 있는 기둥은 포카 황제 기념 원주로

포카 황제를 기념하여 608년 세워진 것이다.
포로 로마노 유적 중 가장 늦게 세워졌단다.

 

카스토르-풀룩스 신전과 뒤의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
주피터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풀룩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기원전 484년에 세워졌다.
원래는 코린트식 기둥으로 88개 있었으나 지금은 3개만 남았단다.

 

중세교회인 산티루카에 마르티나

 

저 뒤에 콜로세움의 한쪽 끝이 보인다.

캄피톨리오 언덕
팔라티노 언덕과 맞닿아 있는 캄피톨리오 언덕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 가장 작다.
그렇지만 이 언덕은 로마가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리적으로 볼 때 강과 내륙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어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천연의 요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언덕은 예부터 종교의 중심지로서, 로마에서 가장 신성한 언덕으로 여겨져 왔다.
캄피톨리오 언덕의 남쪽 봉우리에는 로마의 최고신인 유피테르를 모신 신전이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남동쪽에 있는 로마 공회장으로 부터 유피테르 신전을 바라보며
언덕을 오르게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반대쪽인 북서쪽에서부터 오르게 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파르네제 가문 출신의 교황 파울로 3세(1534~1549)는
버려진 이 언덕을 새로 단장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일을 미켈란젤로에게 일임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새로운 건물이나 광장과 같은 도시 공간을 설계할때
기존 주변도로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매우 중요시한다.
미켈란젤로는 로마 시가지에 있던 도로 중심축 중의 하나를
캄피톨리오 언덕으로 연장하여, 이 연장선이 끝나는 부분에 광장을 설계했다.
그리하여 이 광장은 로마 시가지의 한 부분이 된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로마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파라초 세나토리오
캄피톨리오 광장은 'ㄷ'자로 배치된 세개의 건물에 둘러싸인 공간이다.
왼쪽의 팔라초 콘세르바토리와 오른쪽의 팔라초 누오보는 쌍둥이 건물로,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운데 우뚝 서있는 파라초 세나토리오는 고대로마의 카불라리움 폐허 위에 세워져 있는데
현재 로마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팔라초 콘세르바토리

 

팔라초 누오보

 

 

캄피톨리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계단은 미켈란젤로의 캄피톨리오 광장과 연결된다.
왼쪽에 보이는 가파른 계단은 유노 모네타 신전 자리에 세워진
산타 마리아 인 아라첼리 성당으로 연결된다.
이 계단은 원래 이교도들을 물리친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인
스페인의 카룰로스 5세의 로마 입성을 위해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인데,
황제는 이 계단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이 계단이 끝나는 부분에는 거대한 고대로마의 석상이
언덕을 지키는 보초처럼 양쪽에 서 있다.
이것은 카스토르와 폴룩스 쌍둥이 형제가 말에서 내려선 모습이다.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유피테르 신의 아들이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뀔 때 로마의 국력은 매우 쇠잔해 있었다.
이때 라틴족이 싸움을 걸어왔는데,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로마군을 도와 레질루스 호수에서 라틴족을 격파한 다음, 승리의 소식을 로마에 전하고
홀연히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황제의 동상
형제의 석상 뒤로는 캄피톨리오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 광장이 잇는 지점은 로마를 창건한 로물루스가
외부의 인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세운 아실룸이 있던 곳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마치
세상을 다스리는 듯한 자세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었는데,
현재는 캄피돌리오 박물관 안에 보전되어 있다.
이 청동기마상은 1천여 개를 헤아리던 고대 로마 황제의 기마상 중에서
유일하게 폐기의 위험을 모면했다.
라테란의 산조바니 성당 앞에 세워져 있던 것을,
사람들이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착각하고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옮겨다가 소중히 보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제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이 광장은 1536년에 설계를 시작했지만,
설계가 지연되고 공사가 중단되는 등 진행에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완성된 모습을 못 본 채 1564년에 세상을 떠나고,
그 후 40년이 지나서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마무리가 되었다.
이 캄피톨리오 광장은 로마의 나보나 광장,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
시에나의 팔리오 광장 등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광장으로 손꼽힌다.
다른 광장은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되었지만 캄피톨리오 광장은
미켈란젤로 혼자서 모든 건축적 요소들을 설계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캄피톨리오 언덕에 관한 글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정확지 않았는데 참 아쉬운 것은 가이드가 있음에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아
혼자 추측만 하고 돌아와 여기저기 뒤적거린 후에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에 의해 디자인 된 그 유명한 광장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바라보는 관점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아쉬웠던 것 중 하나였다.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통일기념관
초기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표부 건물인 베네치아 궁이 있었던
베네치아 광장 남쪽에는 눈부시게 희고 웅장한 대리석 건물이 우뚝 서있다.
이 건물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시가지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규모로 봐서는 콜로세움이나 성 베드로 성당을 능가할 듯한 이탈리아 통일기념관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건물을 '통일기념관'이라 하지 않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라고 부른다.
이 웅장한 기념관은 1878년에 서거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
비토리오 에미누엘레 2세에게 헌정된 것이다.
그는 1870년 이탈리아 통일의 구심점이 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통일기념관은 주변의 역사적 분위기와 도시맥락을 무시하고 웅장하게 지어졌기때문에

캄피톨리오 언덕이 더 왜소하게 보이게 된 것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웨딩케잌이라고 비아냥 거린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서나 눈에 확 띄는 하얀 건물을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10여년전에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트라야누스 황제의 원주에 대한 이야기를 인상깊게 보았었다.
그래서 로마에 가면 저걸 꼭 보고 와야지 했었는데
지난번 여행때는 버스안에서 지나가치며 슬쩍 보았을 뿐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여행 직전에 책에서 베네치아 광장 한 옆에 있다는 걸 확인했었다.
그래서 베네치아 광장에 들어서자 마자 제일 먼저 이원주의 위치부터 확인을 했다.
멀리 길건편에 떡하니 서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가능하다면 길을 건너 코앞까지 가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뛰기 시작하는 순간
나무 뿌리에 걸려 베네치아 광장의 한복판에서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슬라이딩을 하고 말았다.
어찌나 무안하고 창피하던지...ㅜ.ㅜ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들은 무슨 쇼를 하는지 알았을것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괜찮은지 묻고... 도와주느라 난리다...
창피함에 서둘러 그자리를 피했는데...
다행히 사진기는 무사했다.ㅋㅋㅋ

 

트라야누스 황제의 전승기념 원주
다치아 정복을 기념하여 서기 113년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거의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아하고 장려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전승기념 원주는 그 규모로 볼 때 콜로세움이나 판테온 처럼 대단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조각의 측면으로 볼 때도,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다른 거대한 기념물에 뒤지지 않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원주는 18개의 거대한 대리석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기둥을 육면체의 기단이 받치고 있다.
이 기단 한가운데에는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고 문 위에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어 그것이 원주의 정상까지 이른다.
이 원주의 높이는 39.83m로 트라야누스 황제의 공화장을 세우기 위해 깎아낸 언덕의 높이와 일치한다.
이 원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표면을 나선형으로 두르고 있는 부조 들이다.
이 부조의 길이는 무려 200m나 된다.
승리를 축하하는 예식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할 수있다.
2차에 걸친 다치아 전쟁(101~106)의 상황과 로마인과 다치아인들의 풍습을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하여, 마치 돌로 만든 기록 필름과 같다.
이 부조의 길이는 무려 200m나 된다.
기둥의 아랫부분에는 전쟁의 시작,
즉 로마군이 도나우 강에 부교를 만들어 진격하는 광경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에는 다치아인들을 굴복시키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부조의 아랫부분

 

부조의 중간부분

 

부조의 상단

 

부조의 꼭대기 부분
부분 사진들을 근처에서 찍지 못한관계로 찍어온 사진을 확대해서 올렸다.
가능한 세밀한 부분을 올려보고 싶어서...

 

판테온
모든 신에게 받쳐진 신전이 판테온은 서양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꼽히며,
고대 로마의 주요 신전들 중에서 아직도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판테온은 현재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판테온의 입구에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입구의 상단 부에는 이 신전이 아그리파가 세운 것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판테온은 원래 기원전 27년에서 25년 사이에 아우구스투스의 가까운 협력자이자 사위이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격파한 아그리파가 율리아 가문의 수호신인
일곱 개의 행성의 신들을 경배하기 위해 세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전쟁의 신 마르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조상신인
베누스(비너스)를 경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판테온은 두번이나 화재로 전소되었다.
서기110년경 두번째 화재로 파괴된 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판테온을 완전히 새로 지었다.

기본 형태는 원통 위에 거대한 반구가 올려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원통의 지름과 바닥에서 반구의 정상까지의 높이는 똑같이 43.3m이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판테온의 현관 주랑은 16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이 기둥들은 이집산 화강석으로 각각 하나의 돌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관의 상부에는 청동으로 새긴 무구가 있고 그 위에 있는 프론트(삼각형 부분)은
금으로 도금된 청동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현관의 천장도 청동 조각으로 덮여 있었으나,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이 청동을 뜯어내어 베르니니로 하여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 건축용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그 밖에는 판테온 내부는 아직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특히 황색의 기둥들은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반구는 우주를 상징하며, 거대한 '눈',

즉 쿠폴라의 정상에 뚫린 구멍은 행성의 중심인 태양을 상징한다.
지름이 9m인 이 구멍은 제사를 지낼 때 연기가 쉽게 빠져나가도록 한 것인데,
판테온의 내부 공간을 밝히는 유일한 광원이다.
이구멍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은 내부를 고르게 밝혀준다.
판테온의 쿠폴라는 비잔티움의 소피아 대성당, 피렌체의 두오모,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의 돔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큰
조적식 돔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특히 판테온의 쿠롤라는 가장 간결하고 또 가장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것을 모방한 건축이 후세에 많이 등장한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중에서)

 

판테온의 내부
판테온 내부에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묘소와
그의 아들 옴베르토 왕의 묘소 등이 있다.
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520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한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그의 석관은 유리벽 뒤에 있고, 황금색의 비둘기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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