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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16 이탈리아

베네치아(Venice)

by 포도주빛 바다 2016.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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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부터 이탈리아의 날씨를 검색했었다.

내가 알기론 유럽은 겨울이 우기이고 4월부터는 건기가 시작되어서

한달에 한두번 정도의 비를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어찌 된게 매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만 있는 건지...

이탈리아 뿐 아니라 알프스 북쪽은 더 심하게 비가 내린다고 나온다.

그래서 매일 기도했다. 안전하게 평안하게 좋은 날씨도 허락해주시기를...

기도를 너무 빡세게 한모양이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아서 매일 해가 나다 못해 베네치아에 도착해 배에서 내릴 무렵은

작렬(?)하는 태양아래 어디로 몸을 피해야할지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찍었지만 머리에 남은 기억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어디론가 들어가 앉고만 싶어진다.

저 천막 아래 카페에 앉은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기억 밖에 없다.ㅜ.ㅜ

 

 

 

 

2009년 2월에 왔을땐 엄청난 관광객들과 가면과 중세복장으로 치장한 사람들 틈에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었는데...

이젠 걸려있는 몇개의 가변을 보면서 2월의 카니발을 떠올려 본다.

 

 

 

베네치아[Venice]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라군)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대안의 메스테르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고,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도 시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의 사주()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고,

따라서 근래 지반침하와 석호의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알려졌고, 도시공화제()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10세기 말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으로

이탈리아의 자유도시들 중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하고,

출구 쪽의 운하 기슭에 장대한 산마르코 광장()이 자리한 기본적인 도시형태는

산마르코 대성당을 비롯한 교회·궁전 등과 더불어 13세기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5개의 원형 지붕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치아의 몇몇 건축물에서는 동방의 영향을 반영하는 비잔틴풍()

또는 오리엔트풍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에 힘입어서 동방무역을 확대하고,

나아가서 현재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비롯한 동부지중해 지역에 영토를 확대함으로써

14~15세기 초에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 무렵의 베네치아 인구는 약 20만으로 추정된다.

공화국의 정치 중심이었던 두칼레 궁전이 완성된 것도 15세기였다.

16세기 이후, 투르크인에 의해 동부 지중해에서 세력이 약화되고,

따라서 베네치아는 점차 오늘날의 베네토주의 풍요한 농업지대의 중심 도시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도시경제의 쇠퇴와 페스트의 유행으로 16세기에는 인구가 10만으로 감소하였다.

1797년에는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되었고,

1866년에 이탈리아 왕국군에 점령되기까지 반 세기 이상은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인 북부평야를 배후지로 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하였다.

상항()은 서부의 철도역에 인접한 스타치오네 마리티마이나,

20세기에 들어와 대안에 공업항()으로 마르게라가 건설됨으로써,

마르게라·메스트레 등 대안() 지역이 근대공업지대로 발전하였다.

대안의 공업지구는 현재 행정적으로는 베네치아시에 포함되어 있고,

유리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섬, 국제영화제 개최지 및 해수욕장, 카지노 등으로 유명한

리도 등도 베네치아시에 포함된다.

베네치아의 구시가지는 지난날의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산마르코대성당·두칼레궁전·아카데미아미술관 등은 미술·건축예술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베네치아는 로마·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지이다.

대학 및 시() 동부의 현대미술전시장에서의 국제비엔날레, 리도의 국제영화제,

페니체극장에서의 음악 등 문화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구시가지는 면적이 한정되어 있고,

현대생활에는 편리한 환경이 될 수 없으므로 대안부의 도시화가 현저하다.

대안부의 공업은 화학·기계공업이 중심이며,

공업항을 포함한 베네치아항의 취급물량은 이탈리아 제3위를 차지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네치아[Venice] (두산백과)

 

 

 

 

 

현재는 호텔로 사용중인 안토니오 비발디 생가

 

 

 

 

피리지오니 누오베라 감옥

 

피리지오니 누오베라 감옥

유일하게 누오베라 감옥을 탈출한 이가 바로 카사노바였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재판도 없이 5년형을 받아 감옥에 수감된 이유도 가설이 분분하고,

탈출한 방법도 가설이 여럿이라고 하는데, 어떻든 탈출하면서 감옥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이제 나도 자유를 찾아 떠나며 당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나가노라."

역시 낭만가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겠다.

 

 

바로 저 붉은 건물(두칼레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건물 사이의 다리를 건너

바로 하얀 건물(형무소)에 갇혀 수감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재판정과 형무소가 붙어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을 것이라했다.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총독궁의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죄수를 누오베라 감옥으로 이송할 때 이용했단다.

다리를 건너는 죄수들이 탄식을 했다해서 탄식의 다리라고 불렀단다.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

679년부터 1797년까지 1,100년 동안 베네치아를 다스린 120명에 이르는

베네치아 총독의 공식적인 주거지였다. 

9세기에 처음 건설되었고, 현재의 외관은 14~15세기에 형성되었다.

최초의 건물은 마치 요새 같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고딕 양식을 잘 나타내면서도 비잔틴,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복합된 모습이다.

북방의 고딕 양식과 베네치아의 동방적 양식와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을 베네치아 고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 고딕의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건물은 흰색과 분홍빛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회랑은 36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칼레 궁전에는 두 개의 정문이 있는데, 산마르코 대성당에 면한 쪽의 '문서의 문(Porta della Carta)'은

옛날에 정부의 포고문이나 법령 등을 붙이던 곳이다.

문 위에 보이는 날개가 있는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내부에는 총독의 방과 접견실, 투표실, 재판실 등이 있다.

가장 볼 만한 곳은 재판을 담당하던 '10인 평의회의 방'이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 하나로 유명한 틴토레토의 대벽화 《천》,

베네치아의 주요 역사를 그린 그림, 76인 총독의 초상화 등이 있다.

또 궁전 재판실에서 소운하를 사이에 두고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면 감옥이 있는데,

이곳의 감옥은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궁전에서 감옥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다리에 난 창으로 죄수들이 감옥으로 옮겨지면서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베네치아의 총독은 선출되기가 힘들었던 데 비해, 

평의회 의원의 참석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고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의원이 동행해야만 베니치아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의 궁전에서 열리는 모든 공식적인 축제의 비용을 시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불해야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 (두산백과)

 

 

 

 

 

 

 

 

 

 

 

 

산마르코 대성당의 종탑

 

 

산 마르코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종탑에 오르면

나름대로 멋진 베네치아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 더위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수로를 끼고 있는 작은 골목길을 누볐다.

이쁜 가게들도 많지만 무라노 유리로 만든 액자 한개를 꼭 사고 싶었다.

5년전 두브로브닠에서 무라노 유리로 만든 샹들리에를 보았는데 그 색감이 너무 예뻐서

혹 다시 베네치아에 온다면 꼭 한 개쯤 갖고 싶었었다.

 

 

 

 

 

 

 

 

 

 

 

베네치아의 유리공예

베네치아는 유리 공예로도 유명한 도시다.

베네치아에서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곳은

산 마르코 광장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무라노 섬인데

1291년까지만 해도 유리 공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는 본섬에서 크게 번성하였지만

베네치아 왕실에서 작업장을 무라노 섬으로 옮기도록 명령을 내렸다.

겉으로는 공해 발생이 이유였지만 사실은 유리 공예로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유리 공예 기술이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장인들이 이주한 13세기 후반 이후 무라노 섬은

명실상부한 유리 공예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유리 공예의 대표적인 기법은 모래와 자갈에서 얻은 규사라는 원료에

안료를 넣고 열로 가열한 후 긴 빨대를 이용하여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꽃병에서부터 여성들의 액세서리와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졌고, 유럽 왕족과 부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

공방들은 규모가 큰 곳은 5~6명, 작은 곳은 2~3명의 장인과 제자들이 모여

저마다 독특한 유리 제품을 만들어 낸다.

평생 동안 무라노 섬에서 유리와 씨름하던 장인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기도 했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장인들을 빼내 새로운 유리 왕국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다.

특히 북유럽의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이다.

구스타프 왕은 스웨덴 스모랜드 지역에 새로운 유리 왕국을 만들었으며,

현재 이곳에서 베네치아보다 더 예술적인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ㅎㅎ 여기서 작은 액자 한개를 구입했다.

나중에 베네치아에서 찍은 사진을 넣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수로로 나왔다.

곤돌라는 못탔지만 아니 안탔지만 그래도 구경은 해보자고...ㅋ

잘생긴 곤돌라 기사들을..ㅋ

사실 지난 여행 때 타보았는데 정말 심심하고 재미없었다.

이번여행에도 타보신 분들이 뜨겁고 지루했다고 툴툴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ㅎㅎㅎ

 

산 마르코 광장

 

이 뜨거운 햇살 아래도 산마르코 광장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산 마르코 광장

한때 베네치아를 점령했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했다.

그만큼 산 마르코 광장에는 매력적인 건축물과 낭만적인 공간이 많기 때문이며

특히 플로리안 카페와 해리즈 바는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괴테 같은 문학가들은 베네치아에 올 때면 어김없이 산 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를 찾아

손님들과 밤새 토론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한다.

뿐만 아니라 18세기 최고의 바람둥이로 불리던 카사노바도 플로리안 카페를 무대로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속삭였다.
또한 광장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 해리즈 바는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지금도 그 작가들이 사용했던 테이블과 방명록이 보관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마르코 대성당

 

성 마르코 대성당[Basilica of San Marco]

원래 대성당 자리에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쳐온 복음 사가 성 마르코의 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9세기 로마네스크 교회가 서 있었는데 967년 화재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베네치아 통령 도메니코 콘타리니(1043~1071년)는 비잔틴 건축가들의 도움을 받아

훗날 성 마르코 대성당으로 불리게 되는 건축물을 증축 및 재건하도록 명했다.

성당은 1094년에 마침내 축성되었다.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에 있는 성 사도 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세 개의 네이브와 교차하는

트랜셉트, 그리고 돔으로 중앙부와 양 날개를 덮은 그리스 십자가형의 설계를 채택했다.

돔을 다섯 개나 올린 구성은 비잔틴 양식과 고딕 양식을 풍부하게 혼합한 것이다.

서쪽 정면 너머로 현관이 있는데, 다섯 개의 문을 지나면 산 마르코 광장과 이어진다.

반짝이는 파사드는 대리석 판과 도금한 모자이크로 아로새겨져 있다.

빛이 쿠폴라를 통해 들어와 준보석과 금속들이 만들어내는 색의 향연을 비추기 때문에

천장 볼트와 돔 안쪽의 모자이크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무역 제국이었던 베네치아는 이국적인 동방에서 온갖 공예품을 골라 들여올 수 있었다.

기둥도, 조상도, 보석을 박은 이콘도, 프리즈도, 조각도, 모자이크도 모두

고대 건축물에서 가져온 보물들로, 십자군 원정 때, 혹은 그 전후로 배로 실어온 것들이다.

중앙 제단인 '팔라 도로('황금 장막'이라는 뜻)' 위로는 위풍당당한 발다키노가 드리워져 있다.

보고에 보관하고 있는 전리품 컬렉션은 해양 국가 베네치아의 영광과

동지중해의 패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 마르코 대성당[Basilica of San Marco]

 

산 마르코 대성당 지붕에 있는 성 마가의 말과 천사 조각

 

산 마르코 대성당 입구의 모자이크

 

산 마르코 대성당 입구의 모자이크

 

 

 

 

ㅎㅎ 이벽화는 딱봐도 알렉산드리아서 베네치아 상인들이

성 마르코의 유해를 돼지고기 바구니에 숨겨 나오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수상택시 선착장

 

비행기 안에서 예전에 읽다가 접어두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었다.

대운하에 관련한 부분을 읽다가 수상택시를 타고 한바퀴 돌아보는게 어쩜

베네치아를 좀 더 잘 볼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50유로를 아낌 없이 투자했다~ㅋ

하지만 가이드의 유창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끄덕끄덕 했지만

돌아와 사진을 열어보며 한숨이 나온다.

사진과 기억이 따로 놀고 있을뿐 아니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몽땅 다 잊어버린 모양이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아 온다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추억을 할까?

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ㅜ.ㅜ

간간이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 네이버 검색을 통해 복원을 하고...

혹 나중에 또 확인 되면 보완하기로하고... 일단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다.^^

 

 

 

 

 

 

 

 

 

 

 

 

산타마리아델라살루트교회

대운하 어귀에 위치한 바로크 양식의 교회이며,

1630년에 유행한 페스트로부터 이 도시를 구원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어졌다.

 

 

 

 

 

 

 

 

 

 

 

 

 

 

 

 

 

 

 

 

 

 

 

 

 

 

 

 

베네치아 경찰 배

 

 

 

 

 

 

 

 

 

 

 

 

 

 

 

 

 

 

베네치아 버스 배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답게 여느 곳과는 좀 다른 교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운행되는 버스, 택시, 자가용, 관광용 택시, 트럭 등이 모두 자동차가 아니라 배다.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하는 버스는 길이가 10~20m에 달하는 선박으로 50~200여 명이 탈 수 있다.

요금이 저렴하여 시민들은 물론이고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들도 대부분 버스를 이용한다.

택시는 5~10명이 타고 다닐 수 있는 보트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원하는 곳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만큼 요금은 비싸다.

자가용 보트는 5~10명 정도가 탈 수 있는데,

자가용 보트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자동차 주차장에 해당되는 선착장을 갖고 있다.

곤돌라는 관광용 택시에 해당되는 배로 여행 코스와 시간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그리고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갖춘 운전사들이 노래를 하면서 운전을 한다.

트럭 역할을 하는 화물선은 물건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상택시

 

 

 

 

 

 

 

 

 

 

 

 

 

 

 

 

 

 

 

 

베네치아 철도역과 수상버스

베네치아 중앙 철도역에서 내리면 대중교통수단인 수상버스(바포레토)정거장이 있다.

여기서 부터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시작된다.

 

 

 

 

 

 

 

 

 

 

 

 

 

 

 

 

 

 

 

 

 

베네치아를 떠나며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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