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둘러보기/2016 이탈리아

바티칸(Vatican City)

by 포도주빛 바다 2016. 6. 19.
728x90


새벽 4시반에 일어났다.

바티칸은 예약이 어려워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야 겨우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7시 반에 도착해서 맨 앞줄에 줄을 설 수 있었다.

일년전부터 예약하고 8시부터 입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암튼 그래도 10년전 3시간 30분을 기다려 들어갔던 거에 비하면

1시간 30분은 참 별거 아니었다~^^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에 있는 가톨릭 교황국으로 로마가톨릭 문화의 본산지이다.

가톨릭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건축물과 예술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바티칸 궁전은 6세기 교황 심마쿠스 때 교황의 거주관으로 건립하였다.

1377년 그레고리오 11세가 교황궁으로 정하였다.

지금은 건물 대부분을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이용한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벽화·장식과 역사적인 고문서와 공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4세기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식 성당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

16세기에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10여 명의 건축가들이 120년 동안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하였다.

산 피에트로 광장은 17세기에 베르니니가 설계하였다.

중앙에 높이 25.5m의 오벨리스크가 있으며, 광장을 둘러싼 회랑이 있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분수가 있다.

시스토 4세가 건립한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교황선거, 추기경회의 등이 이루어진다.

미켈란젤로의 벽화《최후의 심판》이 있다.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은 그리스·로마시대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라파엘로 전시관에는 라파엘로의 벽화가 있다.

139년 완공된 산탄젤로 성은 교황의 피난처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성 앞의 산탄젤로 다리가 유명하며 베르니니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외에도 라테라노 교회, 산타마리아마조레 교회 등이 있다.

198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바티칸[Vatican City] (두산백과)


바티칸 박물관 입구


바티칸 박물관 출구


우리는 입구로 들어가서 출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베드로 성당으로 나올예정이다.


출구 위에는 끌과 정을 들고 있는 못생긴 미켈란 젤로와

여인 처럼 아름다운 청년의 라파엘로가 조각되어있다.


드디어 입장을 시작하여 표를 손에 들었다.

디자인이 바뀌었네~


바티칸 정원



ㅎㅎ 현지인 가이드~


최후의 심판


바티칸 박물관안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촬영과 가이드 설명이 금지되었기에

여기 그림판 앞에서 설명을 듣고 들어가야 해서 가이드와 함께 그림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설명을 듣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최후의 심판 [Last Judgement, 最後─審判]

미켈란젤로는 1533년 중순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도를 그리라는 명을 받았다.

클레멘스 7세가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은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한 로마의 점령과 약탈 등 재난의 연속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데, 1534년 교황의 사망으로 이 작업은 일단 중지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바오로 3세가 다시 이 작업을 의뢰함으로써

1535년 4월 16일 발판의 조립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541년 가을, 면적 167.14m2의 벽면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총 391명의 인물상이 드러났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에 의한 《신곡》이라 할 수 있다.

단테가 그 생애 중 만난 사람들을 평가하여 지옥, 연옥, 천국에 그 위치를 매긴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시각적 표현에 의하여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에서 지옥의 세계로

차례를 매겨 나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은 크게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의 5개 부분으로 나눈다.

중앙의 그리스도는 이제까지 흔히 그려졌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수염도 나지 않은 당당한 나체의 남성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곁에는 성모 마리아가 앉아 아래 있는 인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두 사람 주위를 성자들이 거의 원형으로 둘러싸듯 서 있다.

여기는 천사에 가까운 성자들의 세계이다.

그 주변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 혹은 천상으로 올라가고, 혹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공식적인 낙성식이 거행된 1541년 10월 31일, 이 작품은 전 로마 시민의 경악과 찬탄의 표적이 되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처음에는 모두 나체였다.

그러나 1564년 1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칙령이 반포되어

생식기 부분에 덧그림이 그려졌다.

최근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이 벽화에 낀 그을음과 때를 씻어내는 작업이 완료되어

그 동안 가려지고 벗겨져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最後─審判] (두산백과)



껍질이 벚겨 순교한 바톨로매 사도의 손에 들려있는 그의 벚겨진 껍질의 얼굴에

미카엘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어 껍질로라도 자신은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모습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들어가서 보게될 아폴로 조각의 얼굴에 토루소의 몸통을 그려 넣어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렸다고 했다.




천지창조


천지창조[Genesis, 天地創造]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이 천장화는 성서의〈천지창조〉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즉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다.

첫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하늘과 물의 분리〉〈달과 해의 창조〉〈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려나간 순서에 따라 화면은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차츰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림은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 만성절인 11월 1일 제막식을 가졌다.

그후 500여 년 동안에 이 벽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덧칠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1982년에는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 복원작업이 9년에 걸쳐 실시되어

그림을 덮고 있던 때와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이 제거되어 본래의 색채와 형태가 되살아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지창조[Genesis, 天地創造] (두산백과)



아폴로 조각상


드디어 입장을 시작했다.

중요한 몇가지만 족집게 과외하듯이 보고 지나갔다.

어차피 몽땅 볼 시간도 없고 봐도 모르고 설명을 들어도 금새 잊혀질테니...ㅎㅎ







라오콘 군상





토르소









자주색 대리석


바닥 모자이크


바닥 모자이크









지도의 방


시스티나 성당 내부는 촬영 금지라 아쉽지만 사진이 없다.


성당입구


시스티나성당을 나와 성베드로 성당으로 이동을 했다.


성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교의 정신적인 수도이자, 가톨릭 순례 여행의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예수가 죽은 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전도하던 베드로는 현 교회 언덕에서 64년 네로 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

이후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4~349년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를 지었다.

1506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새로운 바실리카 건축을 명하면서 거대한 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120여 년 동안 콜로세움이나 판테온에서 수많은 자재를 약탈해 건물을 지으면서

로마 문화재가 많이 훼손되고,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해 나중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빌미를 제공하는 등

수많은 사연을 남기며 세계 최고의 건물이 탄생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다.

깊이 218m, 높이 137m, 총 면적이 22,067㎡이다.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기둥 778개, 제단 44개, 모자이크 135개, 동상 395개로 구성된다.

쿠폴라(돔)는 1547년부터 대성당의 건축에 끊임없이 정진했던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쟈코모 델라 포르타가 맡아 1590년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돔 내부의 직경은 42.56m, 정상까지의 높이는 136.57m이다.

돔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경이 매우 아름다우니 꼭 올라가 보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정면은 카를로 마데르노의 설계로 1612년에 완성되었다.

폭 114.69m, 높이 45.55m로 거대한 창문들과 입구, 로비로 이어진다.

최상단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하나의 발라우스트라(작은 원주들) 위에 6m 높이의 조각들이 있으며

옆에는 두 개의 탑(종탑과 시계탑)이 있다.

가운데 창문은 교황의 강복대이다.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을 때나 성탄절과 부활절에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도시와 세상에)"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는 곳이다.

회랑에는 5개의 문이 있는데 이 문들은 각각 성당 내부 공간을 구획하는 다섯 개 통로의 입구에 해당된다.

왼쪽의 첫 번째 문은 '죽음의 문(Porta della Morte)'으로 이 문에는 예수의 죽음,

성모마리아의 죽음, 교황 요한 23세의 죽음 등이 청동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가운데 '청동문(Porta di Bronzo)'은 피렌체 조각가인 안토니오 아베룰리노가

1455년 옛 콘스탄티누스 시대 성당의 것을 옮겨온 것으로 하단에는

베드로, 바오로 성인 두 분의 순교 모습이 있다.

오른쪽의 '거룩한 문(Porta Santa)'은 25년마다 있는 성년()에만 열린다.

나머지 두 개의 문은 선과 악의 문, 성찬의 문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하고 장엄한 공간에 압도되고 호화롭게 장식된 내부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성당의 내부 길이는 현관을 포함해 211.5m이며, 천장 높이는 45.44m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Pieta>가 있다.

성당 안의 조각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가 성모의 팔에 안긴 모습을 조각했다.

미켈란젤로가 24세 때(1499년) 제작한 <피에타>는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쿠폴라 아래에는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천개)가 중앙 제대를 덮고 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요청으로 만든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과 함께 르네상스, 바로크의

양대 예술작품 중 최고로 일컬어진다.

네 개의 나선형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올리브 가지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발다키노의 높이는 29m이며 중앙 제대 아래는 성 베드로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교황 요한 23세(1963년)와 바오로 6세(1978년)의 무덤도 볼 수 있다.

대성당 지하 무덤 출구 앞에 있는 성 베드로의 청동좌상은 13세기 플로렌스 출신의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작품이다.

베드로의 오래된 대리석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중세부터 이곳에 다녀간 신자들이 베드로의 발에 입맞춤해서 오른쪽 발가락이 거의 다 닳아 버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성 베드로 광장


성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

산피에트로광장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바로크양식의 거장인 화가·조각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가 1656년 설계해,

12년 만인 1667년 완공하였다.

입구에서 좌우로 안정된 타원꼴이며, 가운데서 반원씩 갈라져 대칭을 이룬다.

좌우 너비는 240m이다.

정면 끝은 산피에트로대성당(성베드로대성당)의 입구에 해당한다.

반원형인 광장 좌우에는 4열의 그리스 건축양식인 도리스 양식 원주 284개와 각주 88개가

회랑 위의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다.

테라스 위에는 140명의 대리석 성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회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Caligula)가 자신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40년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로 옮겨진 뒤 경기장에 세워졌으나,

후에 경기장에서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58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뒤에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알렉산데르 7세 가문의 문장십자가가 장식되었는데,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약탈 문화재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인식될 만큼 많은 굴곡을 겪은 건축물이다.

높이는 25.5m, 무게는 320t이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카를로 마데르나(Carlo Maderna)와 카를로 폰타나(Carlo Fontana)가 각각 만든

2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베드로가 순교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자,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 (두산백과)




창 옆으로 살짝 보이는 지붕이 교황님의 집무실이라고 한다.


지붕엔 성인들의 조각이 올려져 있고...

올해는 25년마다 있는 성년(年)이라서 '거룩한 문(Porta Santa)'이 열려있었다.

근데 사진이 없네...-_-;;;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Pieta>

성당 안의 조각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가 성모의 팔에 안긴 모습을 조각했다.

미켈란젤로가 24세 때(1499년) 제작한 <피에타>는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의 모자이크


베드로 성당 안에 있는 모든 그림은 모자이크로 정교하게 그려진 것이라고

십년전에 왔을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천개)



쿠폴라(돔)

1547년부터 대성당의 건축에 끊임없이 정진했던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쟈코모 델라 포르타가 맡아 1590년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돔 내부의 직경은 42.56m, 정상까지의 높이는 136.57m이다.





 카를로 마데르노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정면

최상단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하나의 발라우스트라(작은 원주들) 위에

6m 높이의 조각들(그리스도와 11제자들)이 있으며 옆에는 두 개의 탑(종탑과 시계탑)이 있다.

가운데 창문은 교황의 강복대이다.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을 때나 성탄절과 부활절에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도시와 세상에)"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는 곳이다.


728x90

'세상둘러보기 > 2016 이탈리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Roma)   (0) 2016.06.19
산지미냐노(San Gimignano)  (0) 2016.06.18
피렌체(Firenze)  (0) 2016.06.18
피사(Pisa)  (0) 2016.06.18
친퀘테레[Cinque Terre]-라스페치아[La Spezia]  (0) 201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