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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17 북독일과 베네룩스

독일-포츠담

by 포도주빛 바다 2017.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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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ücke)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ücke)

독일 하펠 강 위에 있는 다리이다

브란덴부르크 주의 포츠담과 베를린의 반제를 잇는다

다리명은 근처의 글리니케 궁전에서 따온 것이다.

 

1962년 소련에 억류중이던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와 미국에 억류중이던 KGB 요원 루돌프 아벨을 

이 다리에서 교환한 것이 대표적으로 냉전 시대 내내 여러 차례 동서 양방의 간첩 교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간첩의 다리(Bridge of Spies)라는 별명이 있다.

 

 

하펠강(Havel R.)

 

 

 

다리 중앙의 서독 지역에서

 

 

 

 

 

다리 중앙의 동독지역에서

 

 

 

 

 

 

 

 

포츠담 [Potsdam]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남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 하펠강(Havel R.) 연변에 위치해 있다

면적의 25%만이 도시지역으로 녹지대가 대부분이며, 하펠강을 포함해 20개의 호수와 강이 있다

도시는 크게 11개의 역사지구와 2003년 도시로 새롭게 편입된 9개 지구로 나눠져 있다

북쪽과 중앙 지구는 주로 역사적인 건물들이, 남쪽 지구는 새롭게 건립된 큰 건물들이 있다

1918년까지 프로이센 왕의 거주지역이었으며, 19세기부터 독일 학문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오늘날에는 세 개의 공립대학을 비롯해 30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체칠리엔호프 궁전(Schloss Cecilienhof)에서 포츠담회담이 개최되었으며

통독 이후, 새롭게 조성된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가 되면서

도시의 초기 외관을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멋진 자동차 한데가 보인다.

분위기는 2차대전 무렵의 자동차 같지만...

이쁜 하트 모양이 앙징 맞다.ㅋㅋ

 

 

 

포츠담 지역에 들어왔다.

 

 

 

 

 

 

 

 

 

 

 

 

 

 

 

 

 

 

 

 

 

 

 

 

 

 

 

상수시 [Sanssouci]

 

 

 

 

상수시 궁전 주차장

 

 

 

 

모형도가 보이고...

 

 

 

 

메인궁전인것 같다.

 

 

 

궁전 올라가는 길...

 

근세(?) 복장의 악사가 이른 아침부터 연주에 열중하고 있다.

 

 

 

역시 경비병도 근세 복장이다.

 

 

 

드디어 궁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와... 생각보다 많이 크다.

궁보다는 정원이...

 

 

 

정원 가꾸는데 정성을 기울였음이 느껴진다.

 

 

 

 

 

상수시 [Sanssouci]

 

상수시 [Sanssouci]

1744, 프리드리히 대제는 포츠담 외곽의 나지막한 남향 언덕에 

6단 테라스를 파내고 포도 덩굴을 심도록 명했다

프리드리히는 산꼭대기에 지을 왕실의 별궁을 위해 직접 스케치를 몇 장 해서 

한스 게오르크 벤체슬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에게 보냈다

프리드리히가 원한 것은 정무에서 도피할 수 있는 작고 조용한 은신처였다

이듬해 왕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사가 시작되어

1747년 개관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으며 실내까지 완전히 공사가 끝난 것은 1748년이었다.

 

정면은 앞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반원형 열주를 향해 열려 있다

두 줄로 늘어선 코린트식 벽기둥은 현관과 내부의 대리석 홀에서도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이 대리석 홀은 상수시 궁전의 심장부이다

타원형으로 테라스를 향해 낸 세 개의 남향 창은 물론 천장에서까지 빛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프리드리히는 만찬 손님들을 맞았는데

이 중에는 총명한 정치가, 예술가, 음악가, 문인들도 있었다

알현실과 음악실은 흰색과 황금색의 특히 섬세한 로코코 스타일로 꾸며졌다

그 밖에도 프리드리히의 원형 서재가 있는데

이곳은 특별히 따로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조각과 회화 작품들을 전시한 화랑도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공원에도 다양한 건물을 짓게 했는데

여기에는 화랑(1747)과 요한 고트프리트 뷔링이 설계한 중국식 찻집(1754~1757), 

그리고 카를 폰 곤타르트의 작품인 <우정의 사원>(1768~1770)이 있다

왕의 침실(1786~1787)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시 장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모습을 보면 베르사유궁전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았던 여름궁전의 정원과 닮아있었다.

하긴 모든 궁전들이 다 베르사유를 모델로 삼았으니 그럴 수도 있긴 했겠다.ㅋ

 

 

 

 

 

포도덩굴 정원은 다른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상수시 정원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무덤

 

프리드리히대왕1786817일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에서 갑작스레 죽게 된다

당시 대왕의 나이는 74였다

시신은 포츠담 교회의 왕실 납골당에 안장되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의 시신이 여기저기를 전전하였으나

독일 통일 후인 1991년에 상수시 궁전의 마당에 옮겨져 

지금은 그의 유언에 따라 개들과 함께 묻혀 있다.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국민들을 위해 감자를 들여왔고 

직접 매일 감자를 먹으며 감자 보급에 힘써서 감자보급에 힘써 

식량 위기를 넘길수 있도록 도왔다고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주민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무덤에 이렇게 감자를 올려놓고 간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the Great)

프리드리히 2(독일어: Friedrich II, 1712124- 1786817)는 

독일 프로이센 왕국의 제3대 프로이센 국왕이다.

(재위 : 1740531- 1786817).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치고 재판과정에서 고문을 근절한 계몽군주였다.

 

국가를 통치하고 인재를 기용하는 것과 군대 조직과 군대의 지휘

정복전쟁 지휘를 직접 담당하는 등의 역할을 모두 빈틈없이 해결했다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발휘해 프로이센을 당시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플루트 연주 등 예술적 재능과 관심까지 겸비하고 있었기에 계몽전제군주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또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독일 제국 내의 프로이센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오스트리아와 주변 강국에 맞선 외교전략과 전쟁을 통해 프로이센의 영토를 확장하고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만든 특출한 군사 전략가였다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와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한 군사 병력을 위해 국민징병제를 실시해 프로이센 남자들만 군입대를 시켜 

군사훈련을 강화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독일내 왕국, 공국들과는 다른, 모든 종교에 

관용적인 정책을 폈고 보통교육을 확대했으며 성문헌법 제정작업에도 참여했다

정치분야에서는 스스로를 국가의 첫 번째 종이라고 자처하면서 

전제정치에 인간적인 자비로움을 접목시키려고 시도해 개화된 독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샤를마뉴, 나폴레옹과 함께 유럽의 위대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후세에 독일인들로부터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 Friedrich der Grosse, Friedrich the Great), 

영광의 프리드리히(honor of Frederick) 등으로 불리게 된다.

 

 

대왕의 11마리 개의 무덤

 

그의 유언대로 기르던 11마리의 개와 함께 묻어주었다고 한다.

 

 

 

 

 

 

 

 

 

 

 

 

 

 

 

 

 

 

 

 

 

 

 

 

 

 

정원을 지나 황금으로 만든 중국 찻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산책도 할겸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멀까 하고 시작한 길이 생각보다 꽤 멀다.

 

 

 

 

 

 

 

 

 

저기 보인다~!!

 

 

 

 

 

 

 

 

중국찻집

 

 

 

 

 

 

 

중국풍의 금칠한 장식들이 눈길을 끈다.

 

 

 

 

체칠리엔호프궁 [Cecilienhof Palace]

 

 

 

 

 

 

 

 

 

 

 

체칠리엔호프궁 [Cecilienhof Palace]

1990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베를린과 포츠담의 궁전과 정원에 속해있다

호엔촐레른가(House of Hohenzollern)에 의해 건립된 마지막 궁전으로

빌헬름 황태자와 그의 아내 세실리에가 건축가 파울 슐츠-나움부르크(Paul Schultze-Naumburg)에게 

설계를 맡겨 1914년과 1917년 사이에 건립하였다

설계는 영국 튜더왕가 양식으로, 잉글랜드 위럴반도(Wirral Peninsula)에 있는 

비드스톤 언덕(Bidston Hill)으로 불리는 가옥을 기초로 이루어졌다

인테리어는 파울 루드비히 트로스트(Paul Ludwig Troost)가 했다.

 

당초계획은 1915년에 5개의 안뜰과 문양이 새겨진 55개의 굴뚝 탑 등 

벽돌과 오크재 골조로 된 건물을 완공하는 것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지연되었다

황태자 빌헬름은 1918년 추방되었고, 그의 아내는 1945년 구소련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궁전에 머물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츠담 회담이 이곳에서 개최되었으며

오늘날은 호텔과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빌헬름 황태자와 그의 아내 세실리에

 

 

 

프리드리히 대왕

 

 

 

 

 

 

 

옛여객선의 선실을 옮겨 놓은 모습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장소

 

 

 

 

 

 

 

 

 

 

 

 

포츠담협정 [Potsdam Agreement]

이 회담에는 영국의 처칠(뒤에 애틀리와 교체), 미국의 트루먼, 소련의 스탈린이 참석하여 

독일에 대한 포츠담협정이 조인되었다

일본에 대한 포츠담선언에는 중국의 장제스도 참석했다.

 

이 협정은 연합국의 독일점령 목적을 독일의 무장해제, ()군사화, 비나치화, 민주화에 있음을 명시하고 

그 가운데서도 독일산업의 비군사화에 중점을 두었다.

 

협정은 첫째, 당분간 독일에는 중앙정부를 두지 않고 독일을 단일 단위로서 다루며

분할을 궁극의 방침으로 하지 않는다

둘째, 독일문제의 처리에 관한 외무장관이사회를 설치한다

셋째, 독일로부터의 배상금 징수 등을 정하였다

또한 오데르 강(나이세 강을 독일의 동부국경으로 정하는 데 대하여 

강화회담에서 영국·미국·소련 3개국은 이를 지지한다는 것 등을 약정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포츠담. 포츠담회담 협상테이블

1945년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수뇌 사이에 열린 포츠담회담에서 

조인된 독일의 전후처리 방침에 관한 포츠담 회담을 하던 방으로 지금은 호텔로 사용중 이다.

 

 

 

 

 

 

 

 

 

 

 

미국 대기실

 

 

 

 

 

 

 

영국 대기실

 

 

 

 

 

 

 

 

길을 잘못 들어서 소련 대기실은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다시 돌아들어가고 싶었지만 한번 밖으로 나오면 재 입실은 불가라고 해서...

에고 바보..ㅜ.ㅜ

 

아쉽지만...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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