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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07 남유럽

스페인, 바르셀로나

by 포도주빛 바다 201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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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날씨는 흐려있었다.

 

바르셀로나[Barcelona]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며, 항만규모와 상공업 활동에 있어서는 에스파냐 제1의 도시이다.

교외지역을 포함한 바르셀로나는 비옥한 해안평야에 펼쳐져 있으며,

천연의 양항()과 더불어 에스파냐 최대의 산업도시를 이룬다.

마르세유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의 도시를 기원으로 하며,

BC 3세기에 이 곳을 지배한 카르타고인이 바르시노(Barcino), 즉 바르카가()의 도시라고 명명하였다.

BC 201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아직도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있는

고딕가(Gothic:바리오·고티코스)에는 그 당시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8세기에는 무어인이 점령하였으나, 801년에 샤를마뉴(카를)가 이를 해방하고 지배하였다.

12세기에는 카탈루냐 백작과 아라곤여왕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이 이루어졌고,

바르셀로나는 그 수도로서 해운·수공업·금융의 중심으로서 번영하였으며, 14세기에는 그 절정에 달하였다.

이 무렵에 지어진 고딕식 대성당(13세기 말)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조물들이 구시가 중앙에 많이 남아 있으며,

당시의 바르셀로나의 해양법()인 콘술라도 데 마르는 오랫동안 그 권위를 유지하였다.

1469년에 아라곤과 카스틸랴의 통일로 지방도시가 되었으나, 고유의 카탈루냐어()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1550년에 창립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에스파냐의 선진지역으로서, 카탈루냐 문화에 대한 긍지와 진보적

시민자치의 전통 및 강력한 상공업을 기반으로 번번이 독립을 요구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17∼19세기에는 프랑스군의 침공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북부 카탈루냐 지방을 프랑스에 빼앗기기도 했다.
19세기 말부터는 에스파냐의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1936∼1939년의 에스파냐내란 당시에는 공화정부(인민전선정부)의 마지막 거점이 되었다가

1939년 1월에 프랑코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시가의 중심인 람블라로()에는 은행·상사()·고급상품점이 줄지어 서 있고,

이 거리의 남단인 항구 부근의 푸에르타데라파스에는 콜럼버스의 기념상이 있다.
이 거리의 서쪽은 19세기까지 건물이 들어찼으며,

동쪽에 있는 중세까지의 도시지역을 포함하여 구시가라 부르는데,

그 주위를 론다스라고 하는 성벽 터전의 대로가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쪽의 직교상()의 시가는 1860년의 도시계획으로 건설된 신시가이다.

바르셀로나의 공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섬유공업(방적업)인데, 19세기 후반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그 영향으로 1845년에 14∼15만 명에 지나지 않던 인구가 1931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화학·금속공업도 가세하여 이베리아반도 제1의 도시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한 이례 처음 보는 흐린 하늘이었다.
게다가 일주일 이상을 타고 다니던 깨끗하고 좋은 버스와 기사와 안녕을하고
차도 별루 인데다 인상까지 험악한 기사를 만난 탓에
바르셀로나에 대한 첫인상이 그리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바닷가 빌딩 사이의 경치와...

(다음날의 맑은 하늘~)

우리를 위해 차려진 레스토랑의 멋진 테이블을 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ㅎㅎ

 

 

일년에 3일 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스페인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착한날은 밤새도록 내가 전에 본적 없는 번개와 끊임없이 울려대는 천둥소리로 요란했다.
우리를 이리 반기다니...-_-;;

대신 다음날 아침은 이렇게 맑게 개어서 태양이 찬란히(?) 떠오르며

더운 날씨를 예고하고 있었다.

 

<몬주익 언덕>

구엘공원을 거쳐 바르셀로나 올림픽때 황영조가 달려서 올라갔던

몬주익 언덕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랐다.

멀리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몬주익 언덕에서 바라본 성가족성당>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서니 저 멀리 성가족 성당도 보인다.

더 멀리 건너편 산엔 성당도 보인다.
너무 멀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승연이 디카를 빌려서 찍었다.

 

<까딸루냐 미술관>
12세기~15세기의 까딸루냐의 벽화가 주로 전시 되었있으며
이 미술관 뒤에 종합운동장이 있다.[펌]

 

 <몬주익 스타디움>

황영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곳이다.

스타디움 내부

 

이 경기장을 주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축구팀 로고가 보인다.
근데 들어본적 없네...아는게 레알 마드리드 밖에 없어서...-_-;;

 

 돈을 가장 많이 벌어준다는 농구경기장

 

옴부라나무

원산지는 아르헨티나로

피부가 코끼리를 닮아서 별명이 코끼리 나무라고 한다.

일본인이 디자인 했다는 송신탑

 

<황영조 공원의 황영조의 발>

 

<황영조 공원의 자매결연의 상징 조각>

 

<황영조 공원의 황영조의 상>

우리를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꼬레안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슨 말인가 하고 떠났다.

아마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다는 얘기겠지?

 

 

 

 

 

 

몬주익 언덕의 전망대에서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조망했다.

 

 

<빠에야>
너무 열심히 걸은 탓에 몹시 허기가 졌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간곳은 전날밤 들렀던 바로 그 해변의 다른 식당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또 어찌나 맛있던지...
이번여행에서 가장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었던것 같다.

홍대앞에서 스페인 식당을 한개 발견했었다.

너무 기대하고 들어갔지만 가격만 무지 비싸고

여기서 먹었던 빠에야에는 미치지 못했다는..ㅋㅋ

 

<바로셀로나 해변>
식사를 마치고 일정이 약간 조정되는 바람에 여유시간을 얻었다.
덕분에 전날밤 눈도장만 찍고 아쉽게 떠났던 그 해변에 앉아 썬탠하는 여인들도 구경하고

그렇게 말로만 들었던 지중해를 원없이 바라보았다.

정말 파랗다.^^

 

해변에 가득한 요트들...
보기만 해도 멋져보이는 것은 아마도 미드를 너무 많이 본탓일 것이다. ㅎㅎ
핫튼 나도 한개 갖고 싶다며 열심히 그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

 

 

태양아래 보이는 모든게 아름답다.

 

<람블라스 거리>
정말 많은 주의사항을 듣고서야 람블라스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 공연들을 보느라 사람들은 너무 정신이 없다.
거리를 걷는건 늘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행복했다.

 

람블라스 거리는 시내의 중심가인 카탈루냐 광장과 콜롬버스 탑을 연결하는 번화가를 말한다.

람블라스는 "물이 흐른 흔적"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원래 작은 시내가 있었으며, 19세기 초반에 지금과 같이 산책로가 있는 길로 바뀌었다고 한다.
토요일에는 민속품을 파는 상인들이나 예술인들이 모여 더욱 번화하다.[펌]

 

람블라라고 칭하는 거리는 7개의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거리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거리 이름인 람블라(Rambla)는 아람어로 Tlrrente(냇물)이란 뜻이다.
이샘물을 마시면 바르셀로나에 매혹되어 그냥 이곳에 살게 되나든 이야기기가 있다.[펌]

 

 

 

호텔에 돌아왔을때는 해가 산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밤이 지나면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다.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하는 구시가지의 모습
이번 여행에서 얻은 행운 중의 하나가 바로 피카소 미술관이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전날이 관람예정일이었는데 휴관일이란다. 여기까지 왔는데...아쉬웠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곳에도 피카소 미술관은 많다며 거기에 가보면 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가이드가 일정 조정을 통해 다음날로 일정을 바꾸며
남는 여유시간까지 누릴 수 있게 된것이다.

 

 

 

 

<피카소 미술관 입구>
그리고 방문한 미술관.... 처음엔 다른 곳과 달리 가이드의 특별한 설명이 없다.
그저 언제 그린 그림인지만 이야기할 뿐...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려진 그의 그림은 우리가 알던 피카소가 아니었고
스무살도 되기 전 이미 훌륭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변해가는 그림의 모습들...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이미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미술관 안의 모습은 단 한컷도 담을 수 없었지만...
나한텐 엄청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피카소 미술관>
이렇게 피카소와의 만남을 끝으로 바르셀로나...
아니 에스파냐에서의 일정이 끝이 났다.

 

이베리아 반도라는 특별한 공간... 그 속에 숨쉬고 있는
더 특별한 문화적 혼합... 기독교문화, 아랍문화 그리고 유대문화...
그 안에 녹아있는 애틋한 집시들의 이야기와 저 남미의 숨소리까지도 녹아있는
그 문화와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선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 같았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식사^^
정신 없는 일정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막상 돌아와 찍어온 사진 한장 한장을 들여다보며 마치 퍼즐맞추기를 하듯
그렇게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문화와 역사와 지리 그리고 사람에 대한...

 

 

 

 

공항가는길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네덜란드 공항에 들어서고 있다.

아~ 이렇게 또한번의 유럽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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