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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둘러보기/2007 남유럽

바르셀로나, 가우디와의 만남

by 포도주빛 바다 201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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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공원의 정문

 

구엘공원[Park Guell]

바르셀로나 교외 언덕에 있는 구엘 공원은 원래는 이상적인 전원 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설계된 곳이다.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했다.

구엘 백작과 가우디는 이 곳에 60호 이상의 전원 주택을 지어서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구엘 백작과 가우디의 계획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지만,

부동산 관리책으로 말하자면 실패한 계획이었다.

공원 부지는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런데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서 땅을 고르는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1900년부터 1914년까지 14년에 걸쳐서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몇 개의 건물과 광장, 유명한 벤치 등을 남긴 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였고,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애초의 원대했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공원은 여전히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소수 부유층의 전원 도시보다는 수많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니 오히려 그 생명력과 효용 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원 설계는 가우디 건축 스타일의 독특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위주로 한 건물들, 어디서나 시선을 잡아 끄는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위태롭게 기울어 있는 나선형의 층계,

깨진 도기 조각으로 사치스럽게 장식해 불협화음 속의 묘한 조화를 느끼게 하는 난간 장식,

자연미를 살려 꾸불꾸불한 길과 인공 석굴들, 어느 것 하나 ‘가우디답지’ 않은 것이 없다.

공원 입구에는 경비의 거처와 관리실로 쓰려고 했던 두 개의 건물이 있다.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져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연상시킨다.

독특한 모양의 뾰족탑 지붕이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넓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는 앙증맞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평소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지었다는 신전 건물은

많은 기둥이 특징인 도리스식으로 지어졌다.

곡선의 천장과 천장의 화려한 타일 조각, 광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경사진 모양은

가우디의 독창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다채로운 장식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분수,

아름다움과 효율성을 겸비한 공원의 명물인 벤치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원에는 과거 가우디가 살았으며, 지금은 가우디 기념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도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우리가 들어간 입구는 정문이 아니라 언덕 위로 난 한적한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보이는 모습들은 마치 무슨 유적지를 보듯

돌을 정성껏 쌓아서 만든 기둥과 계단 그리고 의자들의 모습이었다.
돌산을 깍아 공동주택을 지으며 그 산에서 나온 돌을 100% 활용해서 지었다고 했다.

 

 

 

 

영국에 체류할때 전원도시 운동을 알게된 구엘은
도시와 전원이 조화를 이루면서 일체화 되는 전원도시 주택지를 개발하려고 계획했고,
그것을 가우디한테 의뢰했다.
구엘이 제공한 바르셀로나 북서쪽에 있는 약 15ha의 토지는

기복이 심하고 바위투성에 건조하고 물 사종도 나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이의뢰를 받아들여 제자 조셉 쥐졸과 프란세스쿠 벨렌게르와 함께 작업에 들어갔다.[펌]

 

 

가우디는 도로를 만들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방법을 무시했다.
그는 그 지형의 원래 모습을 남기려고 도로는 등고선을 따라 만들었고,
움푹 패인 땅이 있으면 땅을 메우지 않고 그 위에 육교를 놓았다.
이리하여 구불거리지만 경사가 완만한 도록 완성되었다. [펌]

 

 

 

 

 

구엘공원은 공동시설을 갖춘 60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졌으며,
집집마다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용 분양지였다.
그러나 결국 공공 공원이 아니라 사설 정원의 성격이 짙었다.

 

그래서 귀엘 공원 안에 사는 주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담을 둘렀고,
출입구는 정면 등 소수의 장소로 한정 시켰다.

 

콜로네이드 위쪽의 광장
가우디는 신전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을 주거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계획했다.
이 콜로네이드 홀 위쪽에 있는 광장에는 물결치는 듯한 벤치가 연이어 있다.

 

 

 

 

 

 

광장의 벤치와 타일조각
가우디의 모든 건축 작품에 사용한 도자기 조각 장식은
초기 전위 예술이 시도한 비구상적 구성이나 콜라주 기법을 앞선 것이었다.[펌]
가우디는 건축당시 직원들에게 출근길에 길에서 도자기 조각들을 주워오라고 했었다한다.
그래서 모아진 도자기를 또 깨서 조각 장식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곡선 형태의 벤치는 인간의 신체구조에 딱 들어 맞아 앉으면 참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늘 햇볕이 뜨거운 이곳의 기후에도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파빌리온
살바도르 달리가 마치 설탕을 바른 타르트 과자 같다고 말한 구엘 공원 입구에 있는 구조물...[펌]
십자가는 어디서 보아도 십자가가 모양을 나타낸다고 했다.

 

 

 

정면 입구로 들어가면, 두갈래 갈라진 계단이 나온다.
계단 양쪽 벽은 활처럼 굽었고, 장식물과 하얀 타일이 마치 패치워크 처럼 전개된다. [펌]

 

 

 

 

분수와 도자기 타일조각
이 두갈래 사이에는 선명한 색채 타일로 뒤덮인 용 또는 도마뱀이 있다.
그 아래쪽 계단에는 빛나는 색채 타일로 만ㄴ든 카탈루냐 문장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뱀대가리가 달린 둥근 장식이 있다.
그 입에서는 물이 흘러 떨어지는데, 그물은 거대한 물탱크에 고여 있던 것이다.

 

 

 

물탱크는 도리아식 콜로네이드로 이루어진 홀 아래쪽에 설치되어 있으며,
홀은 가우디가 시장으로 계획했던 곳이다.
이 콜로네이드 홀에는 원주가 86개 있어 위쪽에 있는 광장을 반쯤 떠받쳐 준다.
바깥쪽에 있는 원주는 기울어져 있고,
기둥사이의 천장에는 도자기 조각이나 유리로 만든 모자이크의 멋진 원형장식이 있다.[펌]

 

 

 

 

 

 

 

 

기둥들...
돌을 쌓아서 만든 다리는 비스듬한 형태이다.
노인들이 지팡이를 집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똑바로 세운 기둥보다 비스듬한 기둥이
더 힘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가우디가 지은 건물의 기둥은 모두 속이 비어있어서
이것을 수로로 사용한다고 했다.

 

 

 

구엘저택
구엘공원에는 60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분양지는 팔리지 않았고, 입주자라고는 단 한사람의 구입자인 토리아스 마센크 박사,
예전부터 이 곳에 있는 건물에 살던 구엘, 그리고 벨렌게르가 설계한 집에 살던 가우디 뿐이었다.
공원공사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끝났으며, 구엘이 몇몇 행사나 축제 때 공원을 일반인한테 개방했다.
1918년 구엘이 죽은 뒤 아들이 이 땅을 시에 기증했고, 1922년부터 공공 공원으로 사용되었으며
구엘 저택은 현재 초등학교로 이용되고 있다.[펌]

 

파도가 치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는 회랑,

기둥은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비스듬하게 짚고 가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테라스

 

 

구렁이 모양의 담

 

나비를 연상시키는 철재 대문

 

공공주택이 성공했다면 경비실로 사용했을 건물

 

제작년 도서실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에 대한 책을 읽은적이 있었다.
이름만 들었던 가우디에 대해, 구엘공원에 대해 그저 이름이라도 알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지만

책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안고 구엘공원을 떠났다.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가우디에 관한 짧은 문고판 서적에서 읽었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천재들의 삶이란 왜 그리 하나같이 불행한지...
불행해서 천재가 되는 걸까? 천재라서 불행해지는 걸까?

 

 

카사바트요(Casa Batlló)

카사바요트는 지나가는 길에 차안에서 급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카사밀라[Casa Mila]

카사밀라는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고도 하며 1910년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1895년 바르셀로나 신도시계획 당시에 세워진 연립주택이다. 물

결치는 구불구불한 외관은 가우디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이다.

동굴같은 출입구, 독특한 모습의 환기탑과 굴뚝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에는 엘리베이터도 있고, 냉난방시스템이 있는 등 현대적인 설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

건물 안쪽에는 2개의 안뜰이 있고, 주거 부분은 1만 2,000㎡에 이르니 연립주택으로서 손색 없는 건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골목에서 바라본 까사밀라
밀라부부가 천평방미터가 넘는 거대한 공간에 주거용으로 지은 이건물은

옥상까지 모두 7층으로 구성되어있고, 1층에는 출임구와 매표소와 커다란 서점이 있다.

또한 건물 안에는 가우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무료 전시관도 있다.[펌]

 

건물 내부의 벽은 배치의 자유로움을 주기 위해 유선형으로 고안했다.
특히 이 벽들은 기복이 심한 부조 형태를 띠고 있는데 특징은 각 방마다 햇빛이 들어온다.[펌]

 

까사밀라의 창
각 방의 문이나 창문에는 가우디 작품의 전매 특허인 타일, 부서진 대리석, 끼진 병조각 등이 장식되어 있다.
특히 발코니 난간은 가시덩굴처럼 생겼는데 이는 바디아 지방의 우수한 철 주물 장인들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일일이 세공한 것이다.[펌]

 

곧 100년이 되어가는 집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멋진 건물이었다.
몹시 피곤했지만 놓칠 수 없어서 10분의 여유를 버리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달려가 봐야했다.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이코르네트(Antonio Gaudi y Cornet)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감독을 맡은 로마가톨릭교의 성당() 건축물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 가족'이라는 뜻으로,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을 뜻한다.

원래는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 y Lozano)가 설계와 건축을 맡아

성 요셉 축일인 1882년 3월 19일에 착공하였으나, 비야르가 건축 의뢰인과의 의견 대립으로 중도 하차하고

1883년부터 가우디가 맡게 되었다.

가우디는 기존의 작업을 재검토하여 새롭게 설계하였으며, 이후 40여 년간 성당 건축에 열정을 기울였으나

1926년 6월 사망할 때까지 일부만 완성되었다.

건축 자금을 후원자들의 기부금만으로 충당하여 공사가 완만하게 진행되었으며,

스페인 내전과 제2차세계대전 등의 영향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953년부터 공사를 재개하여 현재까지 진행중이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전체가 완성될 경우 성당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약 170m이다.

건축양식은 입체기하학에 바탕을 둔 네오고딕식이다.

구조는 크게 3개의 파사드(Façade;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이루어져 있다.

가우디가 사망할 때까지 완성된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파사드(Nativity Façade)'뿐이며, 가우디가 직접 감독하여 완성하였다.

나머지 2개는 '수난의파사드(Passion Façade)'와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인데,

전자는 1954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2002년이 되어서야 착공하였다.

3개의 파사드에는 각각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각각의 탑은 12명의 사도(제자)를 상징한다. 모두 100m가 넘는다.

또 중앙 돔 외에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140m의 첨탑도 세워진다.

재료는 석재인데, 1953년 건축을 재개하였을 때 석재가 부족하여 그 뒤에는

인조 석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탑의 모양은 옥수수처럼 생겼고, 내부의 둥근 천장은 나무처럼 생긴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천장은 별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 차 있다.

가우디 건축의 백미()로 꼽히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가우디가 직접 건축에 참여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탄생의 파사다'와 예배실은 구엘 공원(Parque Güell),

구엘 궁전(Palacio Güell), 카사밀라(Casa Mila), 카사비센스(Casa Vicens), 카사바트요(Casa Batlló),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지하 예배실(Crypt in Colonia Güell)과 함께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Works of Antoni Gaudí)'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현재의 정문은 예수의 탄생이지만

앞으로 완성되는 20년 후엔 그리스도의 영광이 정문으로 쓰여질 예정이라고 했다.
120년동안 지어지고 있는 성당...

그리고 건축가가 죽은지 100년 가까이 된 건축물...
앞으로 20년을 더 건축해야한다고 했다.
1000년동안 지어졌다는 성 비트 성당도 보았지만

아무튼 유럽의 인내심에는 경의를 보내고 싶어진다.

 

 

탄생의파사드(Nativity Façade)

 

예수의 탄생을 축하는 하는 천사들

 

탄생... 베들레헴 마굿간의 모습
옆에 조각되어있는 종려나무의 모습

 

 수난의파사드(Passion Façade)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와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

 

예수의 뺨에 입맞추는 유다...

그리고 가로 세로 합하면 33이 되는 숫자표

 

무덤에 묻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가우디가 디자인한 설계에서 현대식으로 조각을 바꾸어 작업을 했다고 했다.

 

성경과 나무에 묶이신 예수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

2002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2026년에 완성된다고 한다.

 

20년 후에 완성될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는 그림의 모습으로 완성되겠지?

이번 여행에서는 내부 관람은 하지 못했다.
얼핏 사진으로 보이는 내부의 모습도 아름답기 이를데 없는데...
함께 여행한 분들과 20년후 성당이 완공되면 꼭 다시 오자고했다.
완성된 성가족 성당과 그 내부를 보기 위해...
꼭 그렇게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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