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둘러보기/2015 발트3국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따주 2

by 포도주빛 바다 2015. 10. 29.
728x90

 

 

 

 

 

 

팔코네의 "윈터"


에티엔느 팔코네 [ Etienne Maurice Falconet ]


프랑스 파리 출생. F.르무안에게 사사하였다.
궁정의 애호를 받았으며 로코코 최성기에 활약하였다.
우아함을 자랑하던 당시의 풍조에 부응하여 많은 감미로운 작품을 만들어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1757년 이후 세브르왕립도자기 공장의 조각주임으로서 원형 제작에 관여하였고,
주로 비스큐이[白色無釉瓷器]를 소재로 수많은 사랑스런 소품을 만들어냈다.
1763년에는 러시아의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에게 초대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고,
표트르 1세의 청동 기마상을 제작하여 모뉴멘탈한 대작에서도 뛰어난 작가임을 실증하였다.
대표작은 《크로트나의 밀로》(1754) 《욕녀(浴女)》(1757) 등이며,
《조각에 관한 성찰(省察) Réflexions sur la sculpture》(1761) 외에 몇 가지 저작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코네의 "큐피트"


동양인 관광객이 입에 댄 손가락을 부러뜨렸단다.
한국인이라는 썰도...ㅠ.ㅠ
작품에 손을 왜 대는지...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

 

 

나폴레옹 전투에서 승리한후
전쟁에 참전한 장군들의 초상화를 전시한 방이다.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승리


프랑스 대혁명에 뒤따른 나폴레옹(Bonaparte Napoleon, 1769~1821)의 유럽 정복전쟁은
알렉산드르 Ⅰ세로 하여금 여러 차례 유럽의 전쟁들에 개입하게 만들었다.
그는 1804년에는 영국과 오스트리아 및 스웨덴과 함께 프랑스에 대항하는 연합 전선을 형성했으나
이듬해 아우스테를리츠(Austerlitz)에서 참패했고, 다시 오스트리아 대신 프러시아를 참가시켜 싸웠으나
1807년에 프리드란트(Friedland)에서 패배했다.
별수없이 그는 1807년에 틸지트 조약(the Treaty of Tilsit)을 체결하고,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외화 획득의 주종(主宗)인 밀을 영국에 팔 수가 없어서,
국고는 메말라 갔고 경제도 파탄에 직면했다.
알렉산드르 Ⅰ세가 견디다 못해 1812년에 대륙봉쇄령을 깨뜨리자,
나폴레옹은 징벌전에 나서 1812년 6월 24일 밤을 기해 600,000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르 Ⅰ세는, 자기 자신은 싫어했으나 병사들과 국민들이 좋아하는 67세의 노장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쿠투조프(Mikhail I. Kutuzov)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게 했다.
수보로프의 전우이자 추종자이기도 한 쿠투조프는 우선 모스크바 근교의 보로디노(Borodino)에서
영웅적으로 투쟁하여, 러시아 군대를 분쇄시키려던 나폴레옹의 시도를 저지시켰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보로디노 전투'로서, 9월 7일 하루 동안 계속된 이 전투에 대해 나폴레옹은 뒷날
"내 생애에서 가장 무서웠던 전투는 보로디노에서의 전투였다."고 썼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카테리나 여제의 23살 연하의 애인이 보낸 선물
선물은 시계로 저 공작새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잠시 머물며 확인하긴 어렵다.
그래서 그 옆에 커다란 삼성 TV를 설치하고
이 공작이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해 보여주고 있다.

 

 

 

 

 

 

 

 

 

 

 

 

 

렘블란트의 작품들

 

 

 

 

에르미타주 박물관 외관

728x90